[과학으로 보면 더 재미있는 미술]위작 가려내는 빛의 과학

  • 입력 2007년 12월 21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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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닿으면 속이 보인다

《막 무덤에서 다시 깨어난 예수.

그의 앞엔 성모 마리아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쓰러져 있다.

죽음에서 부활한 것도 잠시,

뜻밖의 작별 인사에 모두 놀란 표정이다. 그런데 예수 옆에 서 있는

노인의 표정이 조금 남다르다.

마치 이 상황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초연한 눈빛이다.

16세기 르네상스 화가

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1480∼1538)가 그린 ‘성모를 떠나는 예수’에 등장하는 노인의 얼굴엔 비밀이 숨어 있다.

화가가 원래 의도했던 표정은

이와 다르다는 것.

어떻게 이를 확인할 수 있을까.

열쇠는 빛이 쥐고 있다.

미술품 분석 전문가와 과학자가 모여

‘빛의 과학’으로 보는 예술 감상의

색다른 묘미를 이야기했다.》

○ 화가가 남긴 자신만의 서명

작품 속 노인의 맨얼굴은 적외선으로 확인할 수 있다. 적외선 사진에 나타난 노인의 얼굴 스케치는 전혀 다른 표정이다. 화가는 원래 이별의 슬픔이 부각되도록 눈을 움푹하고 처지게 스케치했던 것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물감으로 그리는 과정에서 전혀 다른 표정으로 바뀌었다.

김규호 공주대 문화재보존과학과 교수는 “적외선은 붉은색, 흰색, 갈색 물감을 잘 통과하는 반면 청색 계통의 물감은 통과하지 못하는 성질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적외선은 위작을 가리는 데 활용된다. 물감 아래 남은 밑그림의 흔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은 “위조 전문가들은 눈에 보이는 대로만 따라 그리기 때문에 이런 밑그림 흔적까지는 베끼지 못 한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중섭 화백의 작품 ‘서귀포의 환상’을 일례로 들었다. 1951년 제주도 피란 시절 그린 이 작품은 전쟁의 고통과 동심의 세계를 몽환적으로 대비시킨 대표작으로 꼽히고 있다.

“작품 왼쪽 위를 보면 한 아이가 머리를 젖힌 채 나무를 타고 놀고 있어요. 하지만 원래 화가는 아이가 앞을 보고 있는 형태로 그렸죠. 만일 적외선 촬영 장치로 봤을 때 이런 흔적이 나타나지 않으면 위작입니다.”

○ 병원 X선으로 위작 가려

미술품 분석에는 다양한 빛이 활용된다. 민동필 서울대 물리학부 교수는 “물질의 종류와 성질에 따라 그 내부를 볼 수 있는 빛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특히 병원에서 사용하는 X선은 미술품을 분석하는 데 가장 애용된다. 주로 나무 같은 물렁물렁한 소재로 만든 작품의 구조를 살피는 데 활용된다.

좀 더 딱딱한 재질의 금동불상은 이보다 파장이 짧은 감마선으로 본다. 파장이 짧을수록 빛은 재질 속을 더 잘 파고든다. 유리나 도자기로 만든 작품의 내부를 볼 때는 X선과 감마선이 모두 쓰인다.

김 교수는 금속으로 만든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일본의 목조불상을 촬영한 사진을 꺼냈다. 그는 “목조불상의 겉모습을 위조할 수 있지만 그 안의 나뭇결이나 이음매에 못을 박은 위치까지 똑같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또 금속이 굳는 과정에서 생긴 독특한 기포 모양을 감마선으로 확인하면 불상의 진위는 쉽게 가려진다.

작품의 내부 구조와 성분을 한번에 알아내는 방법도 있다. 민 교수는 “에너지가 높은 중성자 입자는 물질의 분자 내부까지 잘 투과하는 성질이 있다”며 “물질 속에서 중성자의 움직임을 파악하면 작품을 손상시키지 않고 정밀한 구조를 알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미술품에 대한 모작과 위작 시비가 크게 늘고 있다. 이 관장은 “이런 논란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는 현대 미술관에서 과학 연구 기능을 점점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는 물리학자인 민동필 서울대 교수와 문화재 보존 전문가 김규호 공주대 교수, 미술전시기획자인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이 함께했습니다.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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