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송년회 퀸 되는 법

  • 입력 2007년 12월 7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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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의 절정이 지났다. 한바탕 실컷 웃고 즐겼다. 분위기가 사그라질 때 주영욱(46·입소스코리아 사장) 씨는 참석자에게 조용히 다가가 사진 한 장을 건넨다. 상대방은 놀란 표정 속에 여운이 담긴 미소를 짓는다. 모임 속에서 즐거워하는 자신의 밝은 표정이 담긴 사진을 받은 것이다. 자신의 멋진 표정에 즐거워하고, 사장(死藏)되기 십상인 추억의 순간을 챙겨 준 마음 씀씀이에 고마워한다.

주 씨는 모임에 갈 때마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사진프린터를 들고 가 사진을 만들어 낸다.

“제가 좋아하는 사진촬영으로 사람들이 기뻐하니 제가 더 즐겁지요. 이런 행동이 튀어 보이지 않도록 은밀히 실행합니다.”

손에 쥐여 준 한 장의 사진을 매개로 한 대화는 예전과는 분명히 다른 친교 단계로 들어서게 해 준다.

신승영실내디자인연구소 신승영(43·여) 소장은 10여 개 모임의 총무를 자발적으로 맡고 있다. 그는 “총무는 허브(hub)”라고 말한다. 모임 장소 섭외와 행사 진행을 위해 애를 많이 써야 하지만 그 누구보다 참석자를 많이 알게 되기 때문이다. 모임에서 애써 주목받으려고 하지 않아도 누구나 자신의 존재를 알아 준다. 노력에 대한 ‘보상’이다.

심재혁(60) 레드캡투어 사장의 휴대전화에는 700여 명의 전화번호가 들어 있다. 참여하고 있는 모임은 50여 개. 사회생활 초년병 시절 만들어 20여 년째 유지하고 있는 모임도 있다. 만나는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면 사교의 그물망이 절로 퍼져 간다는 게 심 사장의 지론이다.

“경기고 57회 졸업생은 1961년에 졸업을 했는데 서울고로 치면 13회, 경복고는 36회와 같다. 저절로 기억하게 만드는 인맥정리 지표다. 이걸 기반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지인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연스럽게 대화의 끈을 이어 나갈 수 있다.”

‘모임의 달인’ 심 사장의 말이다.


촬영 : 박영대 기자

○ 숨어 있는 1인자가 진짜 1인자

주목받고 싶은 욕심에 말을 많이 하는 한두 명이 모임마다 있다. 직접 나서기보다는 질문을 해 말할 기회를 주는 게 대화의 지름길이자 상대를 배려하는 ‘진정한 1인자’다.

뉴욕에서 가장 말 잘하는 사람으로 꼽혔던 경영컨설턴트 데일 카네기는 짧은 질문과 고개를 끄덕이는 호응을 더 많이 함으로써 명성을 얻었다. 친구를 얻는 비법에 대해 그는 ‘미소 짓기’와 ‘상대방 말에 귀 기울이기’에 있다고 했다. 특히 상대방이 “제가 생각하기로는…”, “제가 바라는 것은…”, “제 견해는…”이라고 말하면 자신의 생각을 얘기한다는 신호이므로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

대화전문가 이정숙 SMG 대표는 “한 사람이 말을 많이 하는 모임은 재미없기 일쑤”라며 “일순간 모두 즐겁게 웃고 떠들었다 할지라도 1, 2명씩 점차 발길을 끊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즐겁게 모임을 계속하려면 모든 참석자가 ‘3분을 말했으면 최소 7분은 들어야 한다’는 원칙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와인과 금융’이라는 젊은 금융인 모임을 이끌고 있는 정현석, 조형진(27) 씨는 모임을 준비할 때 적절한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작전’을 짠다. 기존 회원이 친구를 데려오는 형태로 운영되는 모임의 특성 때문에 항상 낯선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이들은 분위기 메이커를 미리 지정해 각 테이블에 앉힌다. 때로는 직접 나서기도 하고 말솜씨와 매너가 좋은 회원에게 부탁한다.

조 씨는 “적절하게 질문을 던지고, 자리도 서로 바꿔 앉기를 권하면서 분위기를 유지한다”고 말했다. 이런 노력 덕택에 올해 초 정 씨와 조 씨가 의기투합해 만든 이 모임에 지금은 금융업계 10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의 사교 모임을 본 삼아 친구를 한 명씩 데려 오는 식으로 회원을 늘렸다. 이 모임은 일자리 정보를 나눌 정도로 튼튼해졌다.

○ 사교의 과학

동물적인 감각이 우세하던 시절, 인간은 동물과 마주쳤을 때 먹이가 될지 먹잇감을 구할지를 순식간에 판단해야 했다. 첫인상으로 판단하는 조상들의 능력은 지금까지 전해져 온다.

첫 만남에선 미소가 중요하다. 말을 하기 전 생기가 도는 눈빛과 미소로 상대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신호를 충분히 보내야 한다. 말보다 표정이나 태도로 전달하는 신호가 7배 많다는 것은 신체언어학자 앨버트 메리비언의 실험으로 알려졌다.

심리학자들은 상황에 따라 필요한 개인간의 거리도 분석했다. 통상 팔꿈치를 가슴에 붙인 채 팔을 앞쪽으로 뻗은 거리(약 40cm)만큼은 절대적인 개인공간으로 분류된다. 이 공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연인이나 부모, 배우자, 자녀, 절친한 친구 등이다.

칵테일 파티나 회식, 사교 모임 등에서는 40∼120cm의 거리를 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처음 만난 이성과 친해지고 싶다면 마주보고 앉는 것보다 옆자리에 앉는 것이 유리하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대면 방식보다 훨씬 우호적인 분위기가 조성된다.

적절한 신체 접촉은 친밀감을 높인다.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의 경영컨설턴트 존 팀벌리는 그의 저서 ‘파워인맥’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소개했다. 마케팅에 활용하기 위한 조사이긴 하지만 점원이 고객에게 제품 설명을 하면서 팔꿈치와 어깨 사이를 접촉했을 때는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50%가량 판매량이 늘었다는 연구 결과였다. 단, 거부감이 없는 신체 부위는 팔과 어깻죽지 정도였다. 팔꿈치와 손 사이의 팔에 접촉했을 때는 불쾌감을 느낀 사람이 많았다.

자리 배치가 주는 효과도 크다. 모임 진행 경험이 많은 신승영 소장은 “남자나 여자끼리 앉으면 분위기가 딱딱해지기 쉽다”며 “남녀뿐만 아니라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강제로 자리를 분산 배치한다”고 말했다. 부부나 연인 동반 모임에서도 부부나 연인을 떨어뜨려서 앉히면 좋다.

○ 준비하는 만큼 즐겁다

송년 모임을 즐겁게 보내려면 준비가 필요하다. 송년회에 입고 갈 옷을 챙기듯이 가서 해야 할 대화의 소재도 머리 속에 넣고 가는 게 좋다.

이미지컨설팅회사 이미지21의 하민회 사장은 “날씨나 취미, 스포츠, 여행 중에서 구체적인 얘깃거리를 준비하고, 자기소개와 건배 인사말 정도는 미리 생각해 두는 것이 기본”이라고 말했다. 노래를 못해 송년모임이 불편하다면 시나 시조, 한시 등을 준비하면 된다. 모임에서 ‘드레스 코드’를 지정하는 일은 구속이 아니라 어색한 옷차림 때문에 서로 난처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배려의 장치’다. 모임 주최자에게 적극적으로 입을 옷에 대해 물어보는 것이 예의다.

질문도 준비사항이다. 이정숙 씨는 “상대방에게 은근한 자랑 기회를 주는 질문을 준비하라”고 말했다. 최근에 프로젝트를 끝낸 사람에게는 그 성과를 얘기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고, 자녀가 진학이나 취업에 성공했다면 그 얘기를 화제로 삼으라는 말이다. 비즈니스 관계로 한 번 만났더라도 취미를 결합시키면 생명력이 긴 모임이 된다. 사진 촬영대회나 미술품 관람 등을 통해 삶을 풍부히 하는 모임이 결성되는 것이다. 그냥 먹고 마시는 모임보다는 품이 많이 들지만 ‘인맥’이 남는다.

글=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사진=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디자인=김성훈 기자 ksh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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