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그리스어원전 완역한 김진성씨

  • 입력 2007년 11월 14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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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만나면서 착잡함과 안도감이 교차했다. 착잡함은 한국 ‘인문학의 위기’의 근원을 확인했기 때문이었고 안도감은 아무리 힘들고 먼 길이라도 묵묵히 걸어가는 그와 같은 연구자들이 있음에서 비롯했다.

국내 최초로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이제이북스) 전문을 그리스어 원전으로 번역한 김진성(42·사진) 씨. 그는 우리 학계에서 천대받는 ‘번역’을 위해 ‘학위’를 포기한 학자다. 서울대 철학과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독일 학술교류처 장학생으로 선발돼 1992년 함부르크대로 유학을 떠났다가 5년 만에 박사학위를 포기하고 귀국했다.

“번역이냐 학위냐를 놓고 5년간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어차피 공부를 할 거라면 호구지책을 위한 학위보다 정말 하고 싶고 해야 하는 것을 하자고 결심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방대한 저술은 크게 예비학문으로서 논리학(오르가논), 변화하는 현상에 대한 이론을 다룬 자연학, 실천을 다룬 윤리·정치학, 제작기술을 다룬 시학·수사학 그리고 이들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형이상학의 5범주로 나뉜다. 이 중 원전번역과 중역을 포함해 국내에 번역된 책은 실천과 제작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20%밖에 안 된다.

전체 저술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자연학 관련 저술은 말할 것도 없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으뜸 철학’으로 불렀던 ‘형이상학’도 일부만 번역됐을 뿐이었다. 특히 ‘형이상학’은 형상과 질료, 잠재태와 실현태, 부동(不動)의 원동자(原動者)처럼 교과서에 등장하는 그 무수한 개념이 담긴 보고(寶庫)임에도….

“1990년 학부 졸업논문을 ‘형이상학’ 4권에 대한 요약으로 잡았는데 도서관을 뒤졌더니 1940년대 일본에서 번역된 책이 나오더군요. 그 책에 나오는 일본식 한자 번역어가 지금까지도 걸러지지 않은 채 통용되고 있는 거죠.”

그가 6년의 세월을 들여 번역한 ‘형이상학’에는 이 책에 등장하는 고대 그리스어의 어원과 의미, 출처까지 꼼꼼히 밝힌 용어사전과 그에 대한 번역용어사전까지 실려 있다. ‘형상’으로 번역돼 온 에이도스(eidos)를 ‘꼴’이란 우리말로 번역하고, ‘부동의 원동자’같은 한자어도 ‘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다른 모든 것들을 움직이는 으뜸가는 것’으로 풀어 놨다.

“서양학문의 개념 중 상당수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비롯했습니다. 그런데 그 근원으로 돌아가 보면 어려운 개념어도 당대의 일상용어였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걸 우리식으로 소화해 내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 학문이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는 겁니다.”

그는 2005년 오르가논의 일부인 ‘범주론·명제론’을 최초로 번역한 데 이어 내년 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은 ‘자연학(physica)’도 출간할 예정이다. 그의 궁극적 목표는 아리스토텔레스 전집 번역. 이를 위해 일주일에 이틀만 시간강사로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모두 원전 번역에 매달리고 있다. 웬만한 대학교수들은 엄두도 내지 못할 열정으로.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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