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파리 본바닥 선율, 아람누리홀과 찰떡궁합

  • 입력 2007년 11월 13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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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오케스트라 내한 연주회를 보고

여자 단원들과 달리 파리 오케스트라의 남자 단원들은 똑같이 디자인된 일종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착용한 방식과 단원들의 체격이 저마다 판이한 바람에 질서정연한 통일성을 느낄 수는 없었지만 그건 분명 유서 깊은 파리 음악원 오케스트라를 잇는 정통 프랑스 악단으로서의 차별성과 자부심을 나타낸 것이리라.

프랑스는 다민족 국가가 되었지만 대표적인 공연단체는 고유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프랑스 토박이를 선호한다. 김용걸이 어렵게 입단한 파리 오페라 발레가 그렇고, 동양인 단원이 극소수에 불과한 이 오케스트라가 그렇다. 그리고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파리 오케스트라는 이틀간의 공연에서 프랑스 음악의 진수를 실로 ‘본바닥의 멋과 열정’으로 들려주었다. 프랑스 음악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빛나는 음색에 대한 예찬이요, 리듬에 대한 예민한 감각이다.

지휘자로 누가 나섰더라도 파리 오케스트라의 개성은 빛났겠지만 이 악단을 7년간 이끌어 온 크리스토프 에셴바흐는 프랑스 음악의 정수와 이 악단의 능력을 최고로 발휘할 레퍼토리만을 선곡하여 놀라운 사운드를 이끌어냈다.

11일 경기 고양 아람누리에서 연주한 ‘환상 교향곡’에서는 베를리오즈의 정신분열적인 과대망상과 괴기스러운 오케스트레이션, 그런 가운데 3악장의 전원적인 적막까지 완벽하게 재현했다. 아람누리 콘서트홀은 이 웅장한 스케일을 가감 없이 전달했는데, 오디오 볼륨을 충분히 올린 듯 우람한 음향을 실연에서 경험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지만 이날 공연은 예외였다.

그만큼 작품과 오케스트라와 홀의 조화가 놀라웠다. ‘환상 교향곡’에 앞서 연주된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은 이번 레퍼토리 중 유일한 비프랑스권 음악이었는데, 첼리스트 양성원은 불과 며칠 전에야 베토벤 첼로 소나타 투어를 끝내고 이번 공연에 임했음에도 뚜렷한 강약과 완급의 대비, 유려한 보잉으로 한국 음악인의 자존심을 지켜냈다.

12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는 베를리오즈, 스트라빈스키, 라벨의 곡으로 꾸며졌다. 이 중 스트라빈스키는 러시아 출신이지만 그 유명한 디아길레프의 발레 뤼스를 따라 파리에 머물던 시기에 ‘불새’를 작곡했고, 이 무용곡의 예리한 색감은 러시아적인 만큼이나 프랑스적이다.

하지만 예술의 전당 공연은 결국 라벨에 바치는 헌사였다. 2부를 ‘어미거위’ 모음곡의 느긋한 뉘앙스로 시작하더니, 프랑스풍으로 변형된 비엔나왈츠인 ‘라 발스’는 물론 반복되는 리듬 위에 오케스트라가 겹겹이 부풀어 오르는 ‘볼레로’를 통해 객석을 도취 상태에 몰아넣었다. 특히 에셴바흐는 ‘볼레로’에서 별 움직임 없이도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발휘했다. 베토벤과 브람스는 독일 악단이 최고이듯이 베를리오즈와 라벨은 베를린 필이나 빈 필이라도 프랑스 일급 악단의 연주력을 넘보기 어렵다는 것을 이틀 연속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유형종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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