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워지는 지구 20선]<5>지구의 미래로 떠난 여행

  • 입력 2007년 11월 9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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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국민이 강제로 피난길에 올라야 하는 나라 전체에 어떻게 값을 매길 겁니까? 소멸되어버린 문화에 어떻게 값을 매길 것입니까? 파괴되어 가는 조상들의 고향에 어떻게 값을 매긴단 말입니까?”

―투발루 국민이 산업 선진국들에 대해 법정 소송을 준비하면서 던지는 질문》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 이런 말들은 어느덧 일상어가 됐다. ‘오존층 파괴’ ‘온실가스’. 이런 말도 일상어에 더해졌다. 전문용어가 일상어가 됨으로써 우리말이 풍요로워졌을까. 아니다. 예전에 날씨 이야기는 다른 대화를 하기 위해 시작하는 인사말로나 여겨졌다. 지금은 다르다. 이 행성에 사는 누구라도 몸으로 기후의 변화를 느끼게 된 것이다. 저자의 아버지는 젊은 날, 지질학자였다. 가족이 다 모였을 때 아버지는 슬라이드를 환등기에 비춘다. 1970년대 후반 안데스산맥의 하카밤바에서 찍은 빙하사진을 아버지는 늘 자랑스러워한다. “저 빙하지역은 해발 5200m, 내가 올라가 본 최고봉이지.” 아버지가 말한다. “하지만 빙하퇴각이 빠르게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아들이 말한다. “그럴지도 모르겠구나. 다시 가 보는 일이야 어렵겠지만 정말 궁금하구나.” 나이 든 아버지의 그 한마디에 아들은 문득 할 일을 찾게 된다.

이 책은 그 뒤 3년에 걸쳐 페루를 비롯해 다섯 대륙의 지구온난화 현장을 살피고 기록한 보고서다. 키 큰 나무들, 맑은 개울물, 야생 마늘풀밭을 사랑하는 저자는 전기톱에 너도밤나무가 쓰러지면 가슴속에서 무엇인가가 불끈 치미는 녹색 감수성을 지닌 젊은이였다.

가라앉고 있는 섬나라 투발루에서는 산호의 백화현상을 보았으며, 섬이 가라앉을 때 같이 가라앉겠다는 노인을 만난다. 알래스카에서는 얼음이 녹고, 집이 무너지고, 오랜 친구인 북극곰이 사라져 가는 것을 슬퍼하면서도 석유개발로 인한 눈앞의 이익을 포기하지 못하는 원주민들을 만난다.

중국 내륙 네이멍구에서는 놀던 아이들이 흑풍(黑風)에 휩싸여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질식해 죽는 이야기를 듣는다. 한때 500여 가구가 살던 마을이 황사에 파묻힌 현장도 본다. 그뿐인가. 저자는 미국의 허리케인 속으로도 들어간다. 1998년 온두라스를 강타한 허리케인에 대해 온두라스의 대통령은 “우리는 지난 50년 동안 건설해 온 것을 단 72시간 만에 잃었다”고 말한다.

고산증을 이겨내면서 찾아간 페루의 웅장하던 열대산악빙하는 빠르게 녹아내려 아버지가 찍은 사진과 달리 처참하게 변한 것을 목도한다. 아버지는 아들이 찍어온 빙하퇴각 사진을 보면서 “슬프다. 정녕 슬프다”고 말한다.

기후변화는 결국 자연이 인간의 끝 모를 어리석음에 내리친 따귀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지금이라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국가 간 협약을 지키도록 정부를 감시하고, 지금껏 살아오던 생활방식을 조금이라도 바꾼다면 예상되는 파국을 합리적인 수준까지 완화시키면서 지연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 뭉클한 체험기는 황당한 지구 종말론이라기보다 우리에게 꾸물거릴 시간이 별로 없다는 절박한 호소문으로 읽힌다.

최성각 작가.풀꽃평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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