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정옥자]정조대왕의 언론관

  • 입력 2007년 10월 26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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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언론은 국가기관이 아니고 민영이며 기본적인 언론 기능을 담당하지만 기업의 성격도 갖는다. 국가의 중추인 3부만큼 중요하다고 해서 제4부라고 하지만 기업은 기업의 생리가 있기 마련이다. 현대의 역대 정권은 언론과의 마찰을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받아들이며 언론을 장악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헤어나지 못한 것 같다. 더구나 현 정권은 언론과 불편한 관계를 자초하는 듯하다.

현재와 가장 가까운 전통시대인 조선시대엔 관료기구가 언론 기능을 아우르고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사간원 사헌부 홍문관의 삼사가 언론을 주요 임무로 하였을 뿐만 아니라 성균관도 언론에 있어서 단단히 한몫을 했다. 나아가 국왕들은 때때로 구언(求言)을 통하여 광범위한 의견 개진의 기회를 주며 언로를 열었다. 상소문을 통한 소통의 기회도 주어져 있었다.

삼사에서 언론을 맡은 이들은 언관이라고 해서 바른말 하는 것을 일삼았기 때문에 국가적 중대사에 침묵하거나 이를 회피하면 직무 유기로 간주됐다. 본분에 충실하기 위하여 목숨까지 거는 일도 있었고 유배당하는 일은 다반사였다. 병자호란 때 국론을 대변하던 언관으로 목숨을 잃은 대표적인 이들이 홍익한, 윤집, 오달제의 삼학사였다. 홍익한은 사헌부 장령, 윤집은 홍문관 교리, 오달제는 홍문관 수찬의 직책에 있었다.

언관 침묵, 직무유기로 간주

언관을 제대로 하려면 우선 시비판단의 기준이 분명해야 하고 행위에 흠결이 없이 도덕성을 확보해야 하며 소견을 당당하게 개진하는 기개가 있어야 하니 언관의 자질 문제가 항상 관심사가 됐다. 그리하여 젊은 시절 언관 노릇 제대로 못하면 삼정승 등 고위직에 올라가지 못했다. 언관을 제대로 한 사람이라야 나이 들어 고위직에 올라갔을 때 젊은 언관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능력을 발휘했다. 그래서 언론 삼사는 관료사회의 꽃이었고 청직(淸職)이라는 명예를 얻었다.

정조대왕도 언론 문제에 아주 민감했다. 그의 근심은 신하들이 침묵하고 무사안일에 빠지는 언론 부재에 있었다. 1784년 규장각 각신 이곤수에게 “언로(言路)의 개폐(開閉·열려 있고 닫혀 있음)는 실로 국가의 흥망과 관련되는 것인데 근일처럼 조용한 때는 없었다. 흥하는 왕은 간신(諫臣·간쟁하는 신하)을 상 준다고 하였는데 나에게는 간신을 죽인다는 이름만 있으니 언로가 열리지 않는 것은 주로 이 때문이다”라고 했다.

자신은 역적을 소탕한 적은 있지만 간관(諫官)을 죄 준 적이 없었다며 그 예로 2년 전 이택징이 상소하여 “규장각은 전하의 사각(私閣)이지 나라 안의 공공지각이 아니며, 각신(閣臣)은 전하의 사신(私臣)이지 조정의 인재지신이 아닙니다”라고 극론하였음에도 불문에 부쳤던 사실을 상기시켰다.

규장각은 정조가 즉위하자마자 세워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는 핵심 기관으로 키우고 있었기에 애정과 자부심이 컸을 터이다. 거기다 대고 규장각은 정조의 사설기관이고 규장각 신하는 정조의 개인 신하라고 했으니 정조로서는 참기 힘든 모욕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은 언론의 침체를 우려하여 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어느 경연 석상에서는 “당신들은 모두 나약하고 열등한 사람들이다. 만약 내가 지금의 조정에 선다면 마땅히 준열한 상소를 내서 시사를 통렬히 논박하고 어려움과 편함을 돌아보지 않겠다. 그렇지 않으면 마땅히 모자를 벗어버리고 갈 뿐이다. 어찌 용렬하게 떼를 지어 남을 쫓아가는가?”라고 했다.

모욕적 상소에도 ‘대못질’ 안 해

왕권이 강화된 탕평 정국 아래 대부분의 신하가 ‘지당대신’(지당하십니다 하는 말만 되풀이하는 신하)이 되어 가던 현실, 그래서 언로가 닫히고 언관들의 기백이 마비되는 현실에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정조대왕은 신하의 언관의식을 북돋우기 위하여 충격요법을 썼던 것이다.

왕조시대 왕도 언로의 열림에 이렇듯 신경 썼던 전통을 가진 나라에서 기자실에 대못질하며 언론과 적대하는 작금의 현실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각을 세워야 직성이 풀리는 쌈닭이 되고 싶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대화를 통해 언론과 조화로운 관계를 모색할 일이다.

정옥자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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