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명식]한자 배척보다 국적불명 외래어 경계를

  • 입력 2007년 10월 23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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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모 대학의 기초한자 시험에서 높은 점수가 예상되던 신입생들의 한자 실력이 낙제점을 받은 것으로 보도됐다. 시험 대상 384명 중 ‘折衷(절충)’을 제대로 읽은 학생은 단 1%인 3명에 불과했으며 ‘강의(講義)’ ‘경제(經濟)’는 96%가 쓸 줄 몰랐으며 자신의 이름을 못 쓴 경우도 20%였다.

사정이 이런데도 초중등생의 ‘상용한자 1800자’ 확대 교육에 따른 찬반 논란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한글의 우수성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한글이 독립적으로 쓰일 때보다 한자와 병행해 쓰일 때 그 의미가 더 분명해진다는 점이다.

중국과 일본 나아가 아시아 각지에서 불고 있는 ‘한류(韓流)’ 열풍을 보자. 한류를 우리말 그대로 한류라고만 표현하면 그 한류의 뜻이 불분명하고 자칫 온도가 낮은 해류인 한류(寒流)로도 착각할 수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용어의 70% 이상이 한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아마 축약된 한문과 숙어가 없다면 신문이나 서적의 지면은 현재 분량보다 훨씬 늘어날 것이다.

우리가 2000여 년 써 온 한자를 ‘구식 옷’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한자를 배척하기보다는 날로 늘어나는 국적 불명의 신조어와 무분별한 외래어 사용으로 인한 언어 파괴 현상을 경계해야 한다. 지상파 방송들이 외국 방송인가 싶을 정도로 외래어를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젊은이들의 대중가요에도 뜻 모를 영어 가사가 줄줄이 박혀 있다.

한자는 한글이 창제되기 전인 기원전 2세기경부터 사용돼 왔으며, 한중일 삼국은 같은 한자 문화권에 속해 있다. 기록과 표현의 수단에 있어서 한문이 배제된다면 역사의 깊이 있는 학문적 연구에 접근할 수 없다.

한자는 비록 한글과 태어난 시대가 달라도 자연스럽게 우리말과 글의 일부로 발전했다. 한자로 된 합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기록유산으로 국보 제32호이다. 바뀌거나 새로운 것이 모두 개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마치 영어가 최고의 언어인 듯이 열광하고 한자 교육을 소홀히 하는 것은 미래에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을 수도 있다.

박명식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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