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소설집 ‘친절한 복희씨’ 펴낸 박완서 씨

  • 입력 2007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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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소설집 ‘친절한 복희 씨’를 낸 박완서 씨. 그는 “소설 쓰기가 나를 늘 새롭게 해 주는 덕에 몸은 노쇠해졌지만 정신은 젊음을 유지한다”며 웃음 지었다. 김미옥  기자
새 소설집 ‘친절한 복희 씨’를 낸 박완서 씨. 그는 “소설 쓰기가 나를 늘 새롭게 해 주는 덕에 몸은 노쇠해졌지만 정신은 젊음을 유지한다”며 웃음 지었다. 김미옥 기자
“소설집으론 9년 만이죠”라는 말에 박완서 씨는 “그렇지만 그동안에 장편도 두 권 냈고요”라고 답했다. 그만큼 바지런히 글을 써 온 작가다. 일흔일곱이라는 나이를 생각하면 그가 쏟아내는 작품의 분량이 무엇보다 놀랍다. 더욱이 어느 작품 하나 모자람 없이 고른 사랑을 받았음을 생각하면 더욱 놀랍다.

박완서 씨가 새 소설집 ‘친절한 복희 씨’(문학과지성사)를 냈다. 출간도 하기 전에 예약판매만으로 인터넷서점 베스트셀러 문학부문 10위권에 들었다. “작품 중엔 ‘대범한 밥상’이 제일 애착이 가는데…. 그걸 제목으로 하면 요리책인 줄 알까 봐요.” 18일 만난 작가는 명랑한 웃음을 터뜨렸다. 정겨운 수다 같으면서도 맛깔스러운, 작가 특유의 문체가 떠올랐다.

“젊었을 적엔 ‘일흔’이란 나이, 생각도 못했는데, 한때는 서른이라는 숫자가 들어간 나이에 죽었으면 하기도 생각했지만.(웃음) 당신네 젊은이들은 노인이 무슨 재미로 살아가나 하겠지만, 다 재미있게 산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지요.” 소설의 주인공이 대부분 남은 것은 그리움뿐인 노인들인 데 대한 작가의 설명이다.

‘노인 주인공’을 특별히 강조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럴 법도 한 것이, 많은 소설에서 노인은 대개 인생의 현자(賢者) 역할을 하는, 비중이 별로 크지 않은 역할을 감당해 온 것. 그래서 작가의 소설의 주인공들은 낯설고도 귀하다. 작가가 가장 아낀다는 ‘대범한 밥상’은 암으로 3개월 판정을 받은 노인 화자가 전하는 여고동창 경실이의 이야기다. 딸과 사위를 사고로 한꺼번에 잃고 손자손녀를 맡게 된 경실이 홀로 된 사돈영감과 일상을 함께하면서 기이한 우애를 나누는 모습을, 작가는 조곤조곤 들려준다. 노년의 고독과 일상의 소중함을 어색하지 않게 엮어놓은 작품은, 작가가 탁월한 이야기꾼임을 체감하게 한다.

“몸이 노쇠해졌다는 건 느끼지만 마음은 늙지 않았어요. 버스와 지하철을 즐겨 타고, 시내에서 영화도 자주 보고…. 당장 연애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인걸요.”

그래서인지 영화제목을 패러디한 ‘친절한 복희 씨’는, 젊은 작가들을 제치고 지난해 문인 100명이 선정한 ‘가장 좋은 소설’로 뽑혔다. 소설은 애 딸린 홀아비에게 시집가 평생을 살아온 할머니가 중풍에 걸린 남편에게 치욕과 소름을 동시에 느끼면서 복수를 계획한다는 내용. 어쩌면 체념이 더 익숙할 듯한 노년의 감각이, 실은 무섭도록 생생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런 한편으로 ‘삶은 신산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살아볼 만한 것’임을, 애써 힘주지 않고 자연스럽게 전달한다.

“이 짓(소설 창작)이라도 안 하면 지루한 일상을 어떻게 견디겠느냐”고 작가는 겸손하게 말하지만 그의 작품은 “70대부터 20대까지 폭넓게 아우르게 된 우리 문학”(평론가 황종연)의 증거다. 시간이 지날수록 쌓이는 ‘그립다’는 느낌이 삶이 주는 선물이고 축복이라는 것을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친절하게 알려 준다. “나를 위로해 준 것들이 독자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면서.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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