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꿈과 반역의 실학자 유수원

  • 입력 2007년 10월 1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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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반역의 실학자 유수원/한영우 지음/296쪽·1만5000원·지식산업사

농암 유수원(聾菴 柳壽垣·1694∼1755). 18세기 조선 영조 시대, 가난으로 허덕이는 백성을 보며 울분을 토한 학자. 귀가 어두워 호를 농암이라 지었으며 당쟁에 휘말려 숙청당한 비운의 실학자.

조선 역사 사상 인물에 대한 실증연구에 평생을 바쳐 온 한영우 한림대 특임교수는 농암이 망각의 늪에 묻혀 있다고 말한다. 한 교수는 농암에 대한 연구가 단편 수준을 넘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해 왔다. 이 책을 내며 한 교수가 “18세기 초 위대한 사상가 유수원에 대한 후학의 조그마한 예의”라고 말한 것은 그 때문이다.

한 교수는 농암이 조선 사회를 강하게 비판하고 개혁안을 제시한 ‘우서(迂書)’를 중심으로 농암의 사상을 분석했다. 영조는 농암을 반역죄로 벌했지만 ‘우서’를 보고 농암에게 개혁안을 묻고 정책에 반영했다. 그만큼 농암이 제시한 “새로운 국가 건설안은 근대적 지표에 매우 근접해 있었다”는 게 한 교수의 설명이다.

농암은 ‘우서’에서 이용후생과 상공업 육성을 강조했다. 농암은 조선 경제를 상공업 경제로 탈바꿈시키려 했다. 당연히 기존 세력의 반발이 거셀 수밖에 없었다. ‘우서’는 이를 예상한 듯 개혁을 반대하고 현실을 옹호하는 수구파인 제삼자가 묻고 유수원이 답하는 가상 토론형식으로 짜여 있다.

농암 사상의 핵심은 사민분업(四民分業)이란 신분개혁안이다. 이를 바탕으로 재정 개혁까지 이뤄내 농상공업 중심의 경제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궁극의 목표다. 사민은 사농공상(士農工商)을 의미한다. 조선 시대 이미 선비 농부 공장(工匠) 상인 계급이 각자 할 일이 나뉘어 있었는데, 사민분업이 웬 개혁안이냐고 물을 수 있다. 농암의 사민분업은 신분의 평등화다. 사농공상이 직업의 내용과 가치가 다르더라도 그를 이유로 신분과 인격을 차별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농암은 사농공상의 직업이 평등한 기초에서 전문화되지 않았기에 나라가 가난하다고 꼬집는다. 양반 문벌이 되면 벼슬과 군역 면제의 길이 트이고 농공상을 하면 평민으로 간주돼 벼슬길이 막히는데 누가 농공상을 자랑스럽게 여기겠느냐고 묻는다. 결국 ‘유식지민(遊食之民)’, 곧 놀고먹는 백성이 많아지니 나라가 가난하다는 것이다. 농암은 특히 ‘사(士)’의 자격이 없으면서 ‘사’라 칭하는 사이비 ‘사’들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직설적으로 말한다.

농암은 이와 함께 국가 수입을 늘리고 재정을 효과적으로 운영할 세제개혁안까지 제시한다. 관료의 업적을 객관적으로 평가해 승진하게 하고 과거제도, 권력 구조, 군사제도에 대한 개선안까지 내놓는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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