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독재는 대중의 동의를 먹고 산다

  • 입력 2007년 10월 6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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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독재3-일상의 욕망과 미망/임지현 외 엮음/572쪽·2만7000원·책세상

대니얼 고든의 다큐멘터리 ‘어떤 나라(A State of Mind)’는 북한의 전승기념일 매스게임에 참여한 북한 여중생 두 명의 일상과 가정생활을 밀착 취재했다. 소녀들은 ‘장군님’ 앞에서 매스게임을 선보일 날을 기다리며 고된 연습을 감내한다. 매스게임 당일 ‘장군님’은 없었지만 그들은 언젠가 ‘장군님’이 매스게임을 보러 올 것이라는 희망으로 연습에 몰두한다.

북한 소녀들의 일상에서, 흔히 북한의 매스게임 하면 떠올릴 강제 동원의 모습은 찾기 어렵다. 고든의 다큐멘터리는 독재와 전체주의의 이데올로기가 대중의 마음속에 자리한 동의와 열광으로 유지됨을 보여 준다.

고든의 다큐멘터리는 이 책이 주목한, 전체주의에 자발적으로 동의하는 대중의 일상과 맞닿아 있다. 2003년 이후 임지현 한양대 교수와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의 ‘대중독재’ 연구 결과를 모은 세 번째 책이다. ‘대중독재’는 독재체제는 강제와 억압이 아니라 대중의 동의에 의해 유지된다는 개념. 우리 학자들이 독창적으로 발전시킨 이론으로 주목받았다.

연구팀은 2003년 ‘대중독재1-강제와 동의 사이에서’에서 대중독재의 작동 체계를 분석했다. 2005년 ‘대중독재2-정치 종교와 헤게모니’에서 지배 이데올로기가 신성화되고 종교화되는 과정을 추적했다.

독일의 일상사 연구자인 알프 뤼트케 등 영국 스웨덴 미국 폴란드의 연구자가 대거 참여한 2005년의 3차 대중독재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논문을 모은 이 책에서 필자들은 독일 나치, 소비에트연방의 스탈린 시대 등 전체주의하에서 살아온 대중의 일상에 주목한다. 마오쩌둥과 스탈린 시대 사회주의 건설 프로그램에 대한 일체감이 일상에서 어떻게 나타났는지 분석한다.

‘대중독재’ 개념은 나온 직후부터 진보 진영의 비판에 직면했다. 독재체제를 정당화하는 비현실적 주장이라는 게 요지였다. 이 책은 진보 진영이 “민중이 ‘수동적이고 잠재적인 협력자였다’는 유쾌하지 않은 역사적 현실에 직면하고선 실체에 눈감아 버렸다”고 말한다. 대중 앞에는 지배와 저항의 이분법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눈에 보이지 않는 복잡한 일상이 있다. 나치 정권에 공감하지 않거나 정권 아래서 이익을 보지 못한 비주류조차 체제에 동의하는 심리를 어떻게 설명할까. 이 책은 묻는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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