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일어교육이 저항 불지폈다…‘식민주의와 언어’

  • 입력 2007년 9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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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주의와 언어/손준식·이옥순·김권정 지음/209쪽·1만2000원·아름나무

일제강점기 일제는 ‘야만과 문명의 이분법’으로 일어의 습득이 야만에서 문명으로 가는 길이라고 가르쳤다. 이 정책은 조선인의 저항으로 순탄치 않았으나 1930년대 말 전면 실시된 이래 1945년 일어 보급률은 30%에 가까워졌다.

그러나 일어는 조선인에게 각성과 저항의 언어이기도 했다. 지식인이나 학생들이 일어로 된 서적을 통해 민족주의자 및 사회주의자로 성장하면서 민족 정체성을 자각하고 저항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배어인 일어를 체제에 대한 비판의 도구로 활용하는 작가도 있었다.

영국의 지배를 받은 인도, 조선보다 더 오래 일제의 지배를 받은 대만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빚어졌다. 이들은 식민 지배국의 일방적 희생자에 머물지 않고, 지배자가 부과한 언어를 통해 정체성을 자각하고 민족주의 운동을 펼쳤던 것이다.

이 책은 인도(이옥순) 대만(손준식) 한국(김권정) 등 세 나라가 식민 지배자의 언어 정책을 어떻게 받아들였거나 저항했는가를 비교했다.

영국은 협력자를 양성하기 위해 제한적인 상층 인도인에게 영어를 가르쳤으나 인도 지식인의 증가와 함께 정치적 소요가 이어지자 영어 교육의 확산을 막았다. 그러나 인도인들의 저항과 신분상승 욕구에 밀려 그 정책은 실패했다. 인도인들에게 영어는 오히려 수많은 언어로 갈라져 있던 인도인들이 소통할 수 있는 매개가 됐다. 인도의 초대 총리 네루는 제헌의회에서 영어로 연설할 정도였다. 이젠 인도에서 영어는 힝글리시(힌디+잉글리시)로 불리며 인도 언어의 하나가 되었다.

대만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일본은 식민초기 전면적인 동화 정책으로 일어보급운동을 전개했다. 대만인은 유용성의 차원에서 일어와 모어를 병용했고, 다종족 사회인 대만은 일어라는 공통어를 통해 서로 소통하고 자신을 자각했다.

3국을 비교하면 한국은 식민지배자의 언어 정책에 가장 강력하게 저항했다. 저자는 그 이유를 한국이 수천 년간 단일 공동체였고, 독자적 언어와 문화에 대한 자긍심, 일본 문화에 대한 상대적 우월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허엽 기자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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