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보면 저자의 뒤를 따라다니며 그의 강의를 듣고 싶어진다. 저자는 서구 철학과 문화와 역사가 시작된 지중해 도시를 테마 여행팀과 함께 다니며 2000년 철학사를 강의했다. 그 여행지는 밀레투스 올림피아 아테네 로마 폼페이를 거쳐 피렌체 세비야까지 이어지고, 가는 곳마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에피쿠로스 아우구스티누스 등 철학자의 육성을 대신 전한다. 그러기에 책은 ‘보는 여행’에서 벗어나 ‘생각하는 여행’에 좋은 가이드일 뿐 아니라 서양 철학사를 일별하고 싶은 청소년에게도 권할 만하다.
그리스 밀레투스를 내려다보며 이 도시가 유럽 문화의 초석이라고 말하는 데서 여행은 시작한다. 이 도시에서 학문이 발생했고 철학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 등 밀레투스학파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에페수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터로 옮겨가면 처음으로 로고스를 진지하게 생각한 헤라클레이토스의 이야기를 듣는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영향을 받은 헤겔 니체 하이데거의 연관성까지 들으면 철학사의 큰 가닥을 잡을 수 있다. 헬레니즘의 중심지였던 페르가몬에서는 청소년 수련장(김나시온)을 둘러보며 수업을 통한 교육과 교양이 인간성에 기초를 두며 세대 간의 연결고리를 만들어내 유럽 문화를 이어갔다는 것도 들을 수 있다.
세비야에서는 서구 제국주의에 대한 반성도 촉구한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유럽이 라틴아메리카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훼손했다는 비난을 받아들이는 데 조금도 망설여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2001년 독일 부퍼탈대에서 정년퇴임했으며 올해 2월 서울대 철학과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이 책은 초판(1, 2부)이 1990년에 나왔으나 2001년에 3부(피렌체에서 세비야까지)를 더했다.
허엽 기자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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