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혜원의 펄프픽션]가드너 도조와 선집 ‘갈릴레오의 아이들’

  • 입력 2007년 7월 14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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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과학의 갈등’주제… SF소설 거장들의 성찬

같은 밤하늘을 바라보면서도 누군가는 ‘꽉 차 있다’고 말하는 반면, 누군가는 ‘텅 비어 있다’고 표현한다. 밤하늘에서 과학자는 공식을 풀어내고 이야기꾼은 신화를 읽어낸다. 과학자와 이야기꾼의 경계에서 공상과학소설(SF)이 탄생한다.

여름밤 별빛 속에 읽을 만한 SF 종합선물세트가 나왔다. ‘갈릴레오의 아이들’(시공사)은 ‘종교와 과학의 갈등’이라는 독특한 주제 아래 열세 편의 SF 단편소설을 모은 앤솔로지(선집)다. 가드너 도조와는 세계 최고의 SF 편집자로 우리나라에는 ‘21세기 SF도서관’의 편집자로 잘 알려져 있다. 작가군은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SF소설상인 휴고상과 네뷸러 상을 연거푸 수상한 대가들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어시스의 마법사’ 등 SF계의 기념비적 작품을 수차례 발표한 어슐러 르 귄,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아서 클라크, 한 해에 휴고상을 두 차례나 받은 조지 마틴, 알파 시리즈로 유명한 로버트 실버버드 등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작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는 것만으로도 유의미하다.

가드너 도조와의 서문 ‘그래도 지구는 돈다’에 따르면, 모든 SF 작가는 갈릴레오의 후손이요 이단이다. 중세로 치자면 SF 작가란 위험한 마법사이자 연금술사요, 화형당해 마땅한 마녀와 다를 바 없는 상상력의 소유자이다. 그들은 안일한 현실에 대해서 투쟁하듯 글을 쓴다. 이 때문에 일상에서는 금기시되는 종교, 정치, 영생의 문제를 거침없이 다룬다.

천국과 지옥이라는 이분법을 극복하고 땅 속에서 별을 찾는 천재 천문학자의 이야기(땅 속의 별들), 300년 전 최초로 전화를 발명하고도 악마로 몰려 교수형당한 발명가의 이야기(하느님의 뜻), 블레이드 러너가 복제인간을 해고하듯 이단을 처분하는 종교 재판 기사의 이야기(십자가와 용의 길), 진화론에 따라서 침팬지들도 종교제도를 갖추게 된다는 이야기(침팬지의 교황), 생명과학의 발달로 DNA에 경전을 주입한다는 이야기(피 속에 새긴 글) 등 미래사회에 대한 다양한 상상의 날개가 펼쳐진다.

윌리엄 깁슨은 ‘컴맹’임에도 불구하고 1984년 ‘뉴로맨서’라는 소설을 통해 ‘사이버 스페이스’를 예견했다. 그처럼 수많은 SF 작가들은 허구를 넘어 예언자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예언의 적중률이 SF 평가의 척도가 되는 것은 아니다. SF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불편한 이야기를 서슴지 않고 꺼낼 수 있는 갈릴레오의 정신이다. 진정한 갈릴레오의 후예인 SF 작가는 현실을 고민하기 때문에 미래를 말할 수 있다. 또한 새로운 시작을 꿈꾸기 때문에 세상의 끝을 말할 수 있다.

한혜원 계원조형예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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