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사랑으로 말하고 듣겠습니다”

  • 입력 2007년 6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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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내달 6일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사제 서품을 받는 청각·언어장애인 박민서 부제. 박 부제는 “나처럼 말 못하고, 듣지 못하고 소외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살겠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서울대교구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내달 6일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사제 서품을 받는 청각·언어장애인 박민서 부제. 박 부제는 “나처럼 말 못하고, 듣지 못하고 소외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살겠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서울대교구
아시아 첫 청각-언어장애 신부 되는 박민서 부제

다음 달 6일은 한국 가톨릭을 넘어 아시아 가톨릭사에서 매우 의미 있는 날이다.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청각·언어장애인 사제가 탄생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두 살 때 홍역을 앓다 약물 부작용으로 장애인이 된 박민서(39) 베네딕도 부제(사제서품 직전의 보좌사제)가 그 주인공이다.

현재 전 세계에서 활동 중인 청각·언어장애인 신부는 14명에 불과하다.

박 부제가 사제서품을 받기까지는 당연히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는 어렸을 적 제대로 된 장애교육을 받지 못했다.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이곳저곳 다니다 보니 장애인 특수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비장애인 학생 틈에 섞여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수화도 배우지 못했다.

일반 학교를 다니길 원하는 부모님 때문에 한 고등학교에서 면접을 봤다. 그는 말도 안 통하는 학생들 속에서 더는 수모를 겪고 싶지 않았다. 면접관이 뭔가를 물어보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필답을 하자”고 했더니 “입학이 어렵겠다”고 통보했다. 부모님은 우셨지만 그는 좋았다.

그래서 한국 농학교에 진학했다. 그곳에서 청각·언어장애인인 미술선생님의 도움으로 신앙을 갖게 됐다.

고교 졸업 후 경원대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하고 서울 가톨릭농아선교회에서 봉사하다 아예 선교회에 눌러앉았다. 그곳에서 만난 정순오(53·번동성당 주임신부) 신부가 그를 눈여겨봤다. 그리고 미국 유학을 권유했다.

1994년 시작된 미국 유학생활은 길고도 험난했다. 농아종합대학인 갈로뎃대에서 철학과 수학을 전공한 뒤 한 신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수화 통역을 해 줄 사람이 없어 타이프를 치는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힘겹게 공부했다.

농아사제 양성에 관심이 많던 당시 뉴욕교구장이 현직에서 물러나며 신학교에서 청각장애인을 위한 신학 과정을 폐쇄해 버렸다. 다시 성 요한 신학교로 옮겨 유학 10년 만에 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4년 귀국 후 가톨릭대에서 2년 넘게 공부를 계속한 박 부제는 지난해 부제서품을 받기 하루 전 부친을 여의었다.

사제 서품 후 박 부제는 청각·언어장애인 사목에 전념하게 된다. 8일은 그가 서울 번동성당에서 수화로 첫 미사를 집전하는 날. 그의 사제서품과 첫 미사를 지켜보기 위해 해외에서 사제 36명이 입국한다.

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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