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밑그림에 밝은 유머 입혀…29일부터 박수룡展

  • 입력 2007년 6월 25일 03시 06분


코멘트
“길가의 돌멩이 하나, 고목나무의 잔가지. 아스라한 소쩍새의 울음이 그렇게 소중하고 예쁠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 정말 필요 없는 데 집착했어요.”

중견 화가 박수룡(53) 씨는 4년 전 생사의 고비를 넘겼다. 급성간경화로 쓰러진 뒤 여러 달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고, 제수씨의 간을 이식받아 일어설 수 있었다.

다시 붓을 잡은 그가 맨 먼저 한 일은 가족과 고향, 자연에 대한 감사함을 표시하는 일이었다. 제수씨에 대한 고마움은 얼마나 큰 것인지,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할 정도”라고 했다.

이후 그의 작품은 일상에 대한 새로운 자각으로 이어졌다. 돌멩이 새 풀 흙 등이 그 앞에 눈부시게 다가왔고 붓질은 경쾌해졌다.

29일∼7월 7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박영덕 화랑(02-544-8481)에서 열리는 ‘박수룡 전’은 그러한 변화를 엿볼 수 있는 전시다. 6년 만의 개인전이다.

전시작은 100호 크기의 대작을 비롯해 20여 점. 그는 이전에 내면의 심상을 격렬하고 어둡게 표현해 왔으나 이번에는 밝고 가벼워졌다. 전시작은 대부분 역사의식이나 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는 “작가가 죽을 고비를 넘기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경향이 있다고 하는데, 나는 일상과 자연을 둘러보다가 그것이 이뤄 온 우리 역사를 새롭게 보게 됐다”고 말했다.

전시작 ‘별이 되겠소’는 삼국시대의 요충지였던 아차산성에서 가져온 흙을 질료로 해서 말을 달리는 무사의 형상을 두텁게 그린 작품이다. ‘신돌석이 그리운 이유’는 경북 영덕군에 있는 의병장 신돌석 장군의 생가에서 떠오른 구상을 화면에 옮겼다. ‘길이 멀어 못갈 곳이 없네’ ‘귀촉도’ ‘은비령에 별을 묻고’ 등도 역사의 흔적을 전하는 작품들이다.

그의 작품들은 역사 이야기를 하는데도 마치 동화처럼 구수하게 풀어낸다는 점이 특징이다. ‘신돌석이…’는 칼을 든 장군의 형상과 초가가 어우러져 유머를 띠고 있고, ‘영웅초상’도 마찬가지다. ‘처용무’도 황당한 표정의 처용이 금세 떠오른다. 박 씨는 “시대성이나 해외 조형 트렌드에 민감했던 예전과 달리, ‘촌스럽고 속없는’ 그림으로 나만의 세계를 표현했다”며 웃었다.

허엽 기자 he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