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부채’ 없는 행복한 글쟁이들

  • 입력 2007년 6월 15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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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신 씨가 들어 본 30대 작가 12명의 삶과 문학이야기

《“누구는 보안업체 다니고 누구는 경비를 하고 누군가는 세일즈 하는 것처럼 소설 쓰는 일 역시 일반 직장이라고 생각합니다.”(소설가 이기호 씨)

젊은 작가들이 선배들과 다른 문학관을 밝혔다.

‘박범신이 읽는 젊은 작가들’(문학동네) 에서다. 이 책은 소설가 박범신(61) 씨가 30대 작가 12명을 초청해 작품과 삶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묶은 것이다. 생생한 구어를 그대로 옮겨 현장감을 살린 덕분에 젊은 작가들의 다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소설집 ‘이상 이상 이상’과 ‘우리는 달려간다’를 낸 소설가 박성원(38) 씨. 그는 “문학이 어떻게 보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데, 가장 요긴하게 사용한다 해도 가위질 같은 걸 하다가 피가 났을 때 임시로 지혈하는 정도밖에 없는데, 그런데 종이책이 그렇게 아무짝에도 소용없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절대 억압하지 않는다”고 문학의 의미를 에둘러 말한다.

박 씨는 “가방은 물건을 넣고 다니는 도구인데, 그게 루이비통이 돼 버리면 어떤 사람은 흠집 날까 봐 자주 들고 다니지도 못하더라”며 “이렇게 진짜와 가짜가 역전되는 현대를 문학으로 옮기려는 것”이라고 소설관을 밝혔다.

지난해 ‘낙서문학사’를 출간한 김종광(36) 씨는 “소설이 갈등의 산물이라는데 사실 이해가 잘 안 가서 인물 간의 갈등 국면을 짧게 처리한다”며 기성관념에 반기를 든다. 그는 그러면서도 “소설을 안 쓰면 허파에 바람이 든 것 같다”며 글을 쓸 수밖에 없다고 한다.

윗세대와 달리 소설 쓰기가 숭고하다거나 그에 대해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이기호(35) 씨. 그는 “일종의 벤처인데, 경제논리에 휘말리지 않는 것”이라고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명쾌하게 정의한다. “내 글이 화염병이 돼야 한다거나 조국 통일에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도 없으며 그래서 오히려 행복한 세대가 아닌가 한다”면서 그는 ‘문학 아니면 죽음을 달라’던 선배 세대와 선을 긋는다.

서울내기여서 사투리 하나 몰랐던 데다 분자생물학과 출신이어서 문학의 길에 들어서기 쉽지 않았다는 심윤경(35) 씨. “문단에서 고졸이나 마찬가지인데 그게 악착같은 헝그리 정신을 주는 것 같다”고 말한다. 다시 태어나도 글을 쓰겠느냐, 혹은 절대 쓰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김숨(33) 씨는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며 중요한 것은 ‘현재’라고 말한다. “소설이라는 게 축복일 수도 있고 저주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살아가면서 매달릴 대상이 있다는 것에 대해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때때로 독자에게 불쾌함을 요구한다”고 소설의 의도를 당당하게 밝히는 백가흠(33) 씨, “작가는 언어로써 독자를 유혹하는 존재”라는 명료한 작가관을 가진 오현종(34) 씨…. 젊은 작가들은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계속 쓸 것이며 다른 모든 건 부차적인 일”이라고 말한다. 젊은 작가들과 대화한 박범신 씨는 “이들의 고백과 발언이 어떻게 작품으로 완성되는지 좇아가 보는 것이야말로 우리 소설문학의 미래”라고 소감을 밝혔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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