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영혼들, 동굴로 숨다…김미월 ‘서울 동굴 가이드’

  • 입력 2007년 6월 8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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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발언해야 할 사회적 책무도, 간직하거나 분개해야 할 체험이나 기억도 없을 때 소설가는 어떤 이야기를 쓸까? 김미월(30·사진) 씨의 소설집 ‘서울 동굴 가이드’(문학과지성사)는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다. 그는 발표하는 작품마다 깊은 문제의식과 높은 완성도로 주목받아 온 신인이다.

김 씨는 화목한 중산층 가정에서 성장했으며 ‘사회적 고민을 하지 않아도 부담스럽지 않은’ 시기에 대학을 다녔다. 치열하게 써야 할 무엇이 있었던 게 아니지만, 그는 소설가가 되기를 꿈꾸었다. ‘서울 동굴 가이드’는 그런 김 씨의 첫 결실이다.

단편 ‘너클’은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화자의 이야기다. 자살한 미혼모의 딸이고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살고 있지만, 화자는 롤플레잉게임에 빠져 있을 때만은 심란한 현실을 잊을 수 있다. 표제작 ‘서울 동굴 가이드’에서 서울의 인공동굴에서 일하는 화자에게는 어렸을 적 사고로 엄마를 잃은 상처가 있다. 화자가 먹고 자는 고시원의 옆방에선 밤마다 신음소리가 나는데, 알고 보니 비디오에서 나는 소리다. 이뿐 아니다. 부모를 잃은 것도 힘든데 이복동생을 떠맡게 된 종구(‘㈜해피데이’), 성추행하던 이웃집 아저씨를 양부로 맞아들여야 하는 기환(‘골방’) 등 소설의 주인공은 대부분 가족에게서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대개 상처뿐인 현실의 도피처로 인공동굴이나 컴퓨터 게임 같은 가짜 현실을 택한다.

소설 속 사람들과는 달리 부모의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났다는 김 씨. 그런 그는 어느 순간, 잘 웃고 씩씩했던 어머니가 실은 혹독한 시집살이를 감내한 것처럼, “밝고 명랑한 듯 보이는 사람도 하나씩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런 문제들에 상상을 더해 다양한 이야기로 만든 것뿐”이지만, 그의 소설은 ‘개인 낙원의 외톨이들’(평론가 이광호)이라는 현대의 어두운 그늘을 상징한다. “쓰고 싶은 글과 씌어진 글의 괴리에 고통스럽다”고 김 씨는 털어놓는다. 어렸을 적 읽었던 수많은 동화처럼 그는 독자의 마음을 위무하는 소설을 쓰고 싶지만, 그가 쓴 소설 속 사람들은 아직껏 자신의 마음을 위로하는 길을 찾아가는 중이다. 책임감도, 기억도 없을 때 소설가는 작은 것들에 상상력을 불어넣는다. 그렇게 쓰인 소설은 병든 현대를 비추는 거울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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