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장제국]‘동해 찾기’ 사생결단식 안된다

  • 입력 2007년 5월 12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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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수로기구(IHO)의 윈포드 윌리엄스 의장은 10일 모나코 총회에서 해도(海圖)집 ‘해양과 바다의 경계’(S23) 4판은 동해 수역을 뺀 채 발간하자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이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해 당사국인 한국과 북한, 일본 등이 합의할 때까지 4판 발행을 미루기로 최종 결정을 내렸지만 한국으로서는 분명히 의미 있는 성과라 볼 수 있다. 한국은 유엔 가입 이후인 1992년부터 남이 듣든 말든 이 문제를 꾸준히 제기했다. 이번 총회 결정은 국제사회가 드디어 공식적으로 동해 표기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일본 내 논쟁거리 되게 해야

동해 표기 문제를 이번 총회에서 다룰 예정이었지만 한국과 일본 모두 표결을 요구하는 제안서를 제출하지 않음으로써 의제로 정식 상정되지는 않았다. 일본이 제안서를 내지 않은 이유는 문제를 국제 분쟁화하지 않고 일본해 표기를 기정사실화하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그런 판단의 저변에는 국제사회에서의 자신들의 영향력에 대한 믿음과, 설사 한국이 제안서를 제출해 표결로 가더라도 이길 수 있다는 여유와 자신감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한국이 제안서를 제출하지 않은 것은 앞으로 2년이라는 시간을 벌어 좀 더 확고하게 지지 기반을 넓힌 후에 한판 겨루기를 해보겠다는 ‘작전상 후퇴’로 보인다. 옳은 판단이다. 이런 전략과 그동안의 성과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동해 찾기’에 나서야 할 때다. 앞으로 2년 동안 우리가 어떤 전략으로 접근하는가가 동해 찾기의 관건이라는 뜻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동해 표기 문제가 한일 양국 간에 엄연히 존재하는 첨예한 분쟁 사안이라는 사실을 국제사회에 지속적으로 인식시켜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그간 당사자인 일본은 ‘존재하지도 않는 문제를 놓고 한국이 억지 트집을 부린다’는 정도의 태도를 취해 왔다. 실제 일본 언론은 우리와 달리 이 문제를 거의 다루지 않는다. 일반 국민의 관심 또한 매우 미미한 형편이다. 일본 내 지한파 지식인조차 한국이 또 ‘난리 친다’고 생각하고 입을 다무는 형국이다.

이러면 우리의 외침이 공허한 메아리로 세상에 비칠 수 있다. 일본이 독도의 분쟁화를 한국에서부터 유도했듯이 우리도 동해 표기 문제를 일본 국민에게 인지시킴으로써 이슈화하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일본인의 입에 이 문제가 오르내리면 오르내릴수록 이슈화되고, 그것이 바로 국제적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세계 각국의 영향력 있는 지도 작성 기관, 관련 학자, 정치지도자와의 유대를 더욱 강화할 필요도 있다. 전문가와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동해 표기의 당위성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도록 이론적 무장을 하고, 이를 폭넓게 인식시키는 외교적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필요에 따라서는 해양 관련 분야에 과감한 지원을 함으로써 한국의 국제적 위상과 영향력을 키워 나가야 한다.

막무가내식 주장은 역효과

이런 전략을 구사함에 있어서 막무가내식 민족주의를 내세워서는 안 된다. 감정적 대응은 오히려 국제 여론이 한국을 등지게 하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보도에 따르면 IHO 총회에 참석한 각국 대표단에 한국에서 무차별 e메일을 보내 빈축을 샀다고 한다.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이다.

동해 표기 문제를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승부전으로 몰고 가기보다는, 이성적이면서 성숙한 모습으로 끈기 있게 대처해 나가야 한다. 동해 표기 못지않게 국가 품위 유지라는 매우 중요한 국익이 함께 걸려 있기 때문이다.

장제국 동서대 부총장·일본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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