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 천상의 현을 울리다…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 별세

  • 입력 2007년 4월 28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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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낳은 세계적 첼리스트 겸 지휘자인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가 27일 별세했다. 향년 80세.

고인은 지난해 말 간 질환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으나 이날 모스크바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숨졌다. 그는 지난달 27일 80세 생일을 맞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초청으로 크렘린을 방문하기도 했지만 이달 들어 건강이 악화됐다.

1927년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태어났으며 모스크바 국립 콘서바토리를 졸업한 뒤 1945년 소련 국제음악콩쿠르에서 황금상을 받았다. 쇼스타코비치와 프로코피예프를 사사했으며 리히테르(피아노)의 반주로 독주회를 열기도 했다. 에밀 길렐스(피아노)와 레오니트 코간(바이올린)과 트리오로도 활동했다.

1974년에는 반체제 인사인 솔제니친과 사하로프를 공개 지지했다가 추방당했다. 공민권을 박탈당한 뒤 서방에서 자신의 역사를 다시 만들었다. 첼로의 한계를 넘어서는 초인적 연주를 선보인 그를 위해 작곡가들은 앞 다투어 곡을 헌정했다. 생전에 세계 초연한 작품은 240곡이 넘는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날, 벽돌 더미에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연주했다. 1990년 소련 체제 붕괴 후 복권된 로스트로포비치 부부는 16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귀국 후 첫 무대에서 지휘한 차이콥스키 교향곡 ‘비창’은 세기의 명연으로 손꼽힌다.

러시아인들은 그를 ‘슬라바’(영광)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므스티슬라프’를 짧게 줄인 이 애칭은 최고 연주자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담고 있다.

그는 한국에서도 4, 5차례 공연을 가졌다. 그는 인터뷰에서 “한국의 김치와 갈비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한국에서 나를 부르면 언제든지 가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애제자 장한나의 추모

선생님이 건네준 음악의 열쇠

언제쯤 그 문을 열수 있을까요

세계적인 첼리스트 장한나(24·사진) 씨는 1994년 로스트로포비치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그의 애제자가 됐다. 장 씨는 27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한 시대가 막을 내린 느낌”이라며 스승에 대한 애도의 뜻을 밝혔다. 이를 정리했다.

선생님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첼리스트였다. 처음 만난 것은 11세 때였다. 선생님 앞에서 연주하고 싶어 선생님이 파리에서 여는 로스트로포비치 콩쿠르에 나갔다. 선생님은 “처음에 첼로가 혼자 걸어 나오고 있는 것 같아 놀랐는데 뒤에 조그만 여자애가 있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연주를 마친 뒤 선생님은 나를 번쩍 안아 주셨다.

이후 15세 때까지 워싱턴,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선생님을 찾아가 레슨을 받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마지막 레슨을 받던 날 선생님은 “네게 음악의 열쇠를 주었다. 이제 그 문을 열고 나가 너만의 음악을 만들어라”고 말씀하셨다.

1996년 첫 음반을 녹음할 때 선생님께서 지휘를 해 주셨다. 선생님은 “첼리스트 음반의 녹음을 지휘한 적은 한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며 “나이 들면 그 뜻을 알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니 첼리스트로서의 대물림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 음반은 선생님께서 지휘한 유일한 첼리스트의 음반이 됐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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