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두 나라 모두 동서양에서 각각 최초로 산업혁명과 기술혁명의 과정을 겪었다. 현실에서 과학과 기술의 발달 속도가 인간을 압도할 때 인간은 상상 속에서는 반대로 비과학적이고 초현실적인 이야기를 갈망하게 된다. 정보화 바람이 거센 21세기, 우리가 또다시 온갖 귀신 이야기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괴담(怪談)’은 라프카디오 헌(1850∼1904)의 눈에 비친 근대 일본의, 말 그대로 ‘괴담’을 모아놓은 아시아 환상문학의 전형이다. 일찍이 최치원 설화나 금오신화 등을 보유한 우리에게 사실 일본식 괴담은 그리 낯설지 않다. 죽어서 나무가 된 유모, 귀신도 울고 갈 만큼 비파 실력이 좋은 호이치, 사랑하는 임을 못 잊어 환생한 여인 오테이, 설녀라는 눈귀신과 결혼한 나무꾼, 구운몽의 성진처럼 꿈속에서 인간의 온갖 희로애락을 경험한 아키노스케, 여자로 변신한 버드나무와 결혼한 사무라이 등 모두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옛날 얘기’들이다. 다만 수컷의 죽음에 너무 슬퍼하다가 제 부리로 배를 찢어 죽은 원앙, 꽃이 피는 것을 보기 위해 벚나무 아래에서 배를 가르는 사무라이 등 빈번히 등장하는 할복 모티브는 일본 특유의 것이라 할 만하다.
문명과 자연, 지상과 천상을 명확하게 가르는 서양의 이분법적 사고에 익숙한 라프카디오 헌의 시각에서 바라볼 때, 일본의 환상문학은 분명 낯설고도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우리의 서사무가인 ‘바리데기’의 경우도 서천서역 무간지옥은 ‘걸어서’ 당도할 수 있는 수평적 공간으로 설정되어 있다. 동물계와 식물계, 산 자와 죽은 자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아시아의 환상문학은 분명 경계 해체를 지향하는 21세기형 영화나 게임에서 각광받는 상상력의 보고이다.
네덜란드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의 말처럼 “세계가 지금보다 5세기 가량 더 젊었을 때 삶에 일어난 많은 일들은 현재와 전혀 다른 모습과 형태를 띠고 있었다”. 인간과 자연, 산 자와 죽은 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교감하던 그 ‘젊은 시절’을, 21세기 디지털 첨단 사회에서 그리워해 본다.
한혜원 계원조형예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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