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와 함께 문화산책]작품속 인물 작명하기

  • 입력 2007년 4월 13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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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 한 자/ 내 이름 한 자/ 아이를 낳으면 그렇게 짓자고….”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에서 여주인공 정연이 부르는 노래한 대목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 노래를 부르는 ‘정연’이라는 이름도 노랫말처럼 만들어졌다.

이 작품을 쓴 연출가 장유정 씨는 자신의 이름에서 한 글자, 평생 추구할 사랑의 대상인 연극에서 한 글자를 따서 주인공 이름을 지었다.

“등장인물 한 사람의 이름 짓는 데 하루 이상 걸린다”고 할 만큼 작가들은 종종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극중 인물 이름에 각별한 애정과 의미를 부여한다. 뮤지컬 ‘달고나’의 남자 주인공인 ‘세우’의 이름은 과자 ‘새우깡’에서 나왔다.

‘7080뮤지컬’을 내세운 이 뮤지컬이 이에 맞는 제목을 고심한 끝에 1971년에 처음 출시된 ‘새우깡’을 떠올렸다. 힘없고 작은 ‘새우’가 1980년대를 어렵게 살아낸 ‘민초’를 상징한다는 의미에서 주인공 이름도 ‘세우(새우)’가 됐고, 뮤지컬 부제도 제목 ‘새우깡’에 맞춰 ‘세우(새우)는 깡으로 산다’였다.

그러나 농심 측에서 ‘새우깡’이라는 브랜드 명을 쓰지 못하게 하면서 제목은 ‘달고나’로 바뀌었지만 ‘세우’라는 이름은 꿋꿋이 살아남았다.

요즘 대학로에서 가장 유명한 이름은 단연 ‘경숙이’와 ‘김종욱’이다. 얼마 전 ‘대박’을 터뜨린 연극 ‘경숙이, 경숙아버지’와 인기 소극장 뮤지컬 ‘김종욱 찾기’에 나오는 이름으로 각각 작품을 쓴 연출가 박근형 씨와 장유정 씨의 개인적 사연이 담겨 있다. ‘경숙이’는 박 씨의 친누나 이름으로 “희곡을 쓸 무렵 누나가 아주 힘든 일을 겪어서 누나에게 힘 좀 내라고 붙였다’고 한다.

여주인공이 인도 여행에서 우연히 만난 첫사랑을 찾는 내용의 ‘김종욱 찾기’의 ‘김종욱’이라는 이름은 장 씨가 인도 여행길에 우연히 비행기 옆자리에 앉으며 알게 된 실제 김종욱이라는 인물과의 개인적 사연에서 비롯됐다. 극중 ‘김종욱’ 외의 다른 배역 이름은 배우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해 캐스팅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지만 ‘김종욱’이라는 이름만은 변하지 않는다.

작가들은 주변 사람의 이름에서 배역 이름을 찾기도 한다. 뮤지컬 ‘첫사랑’에서 주인공 ‘해수’는 바다를 동경하는 인물. 넘실대는 바다가 절로 떠오르는 이름을 짓기 위해 작가와 연출가는 수많은 학생 명단을 훑은 끝에 이 이름을 찾아냈다.

외국 작가들도 종종 이름을 통해 캐릭터의 성격을 드러낸다. 최근 막을 올린 아서 밀러의 희곡 ‘시련’에서 주인공 ‘프록터’는 일개 농부지만 자신의 양심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인물인데 프록터(Proctor)라는 단어에는 ‘감독자’라는 뜻이 담겨 있다.

며칠 전 나란히 막을 올린 연극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와 ‘친정엄마’는 제목에 ‘엄마’가 등장할 만큼 가장 중요한 존재지만 이름 없이 ‘엄마’라는 역할로만 존재한다.

‘엄마는 오십에…’에서는 엄마 이름이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극중 잘난 딸은 짜증 날 때마다, 뭔가 필요할 때마다 수십 번씩 ‘엄마’만 불러댄다. ‘친정엄마’에서 엄마는 아예 이렇게 말한다. “그냥 엄마고 여편네가 내 이름이여.”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자식의 이름을 앞세워 ‘○○엄마’로서 살아가는 이 땅의 수많은 엄마처럼.

이번 주말, 연극 티켓을 예매해 엄마에게 내밀어 보면 어떨까? 티켓 겉장에는 물론, ‘사랑하는 ○○○님께’라고 엄마의 이름을 예쁘게 적어서….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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