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중국철학’… 동아시아 근대성의 ‘화두’풀기

  • 입력 2007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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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빨간 모델’(1934). 구두(상품)를 그린다는 것이 인간의 발모양을 하고 있는 이 그림은 계산가능한 존재로서 도구화된 인간의 역설적 모습을 상징한다. 사진 제공 그린비
벨기에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빨간 모델’(1934). 구두(상품)를 그린다는 것이 인간의 발모양을 하고 있는 이 그림은 계산가능한 존재로서 도구화된 인간의 역설적 모습을 상징한다. 사진 제공 그린비
◇중국철학/이승환, 이동철 엮음·556쪽·2만5000원·책세상

◇모더니티의 지층들/이진경 엮음·455쪽·2만 원·그린비

“인문학의 위기는 인문학자들이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창출해 내지 못한 데에 궁극적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지식지형도’라는 책세상 출판사의 새로운 총서의 첫 책으로 출간된 ‘중국철학’의 서문에 등장하는 말이다.

“이론적으로 고고한 이론가보다는 허술함을 감수하며 대중에게 다가가는 이론가가, 이론이 대중과 결합함으로써 세상을 바꾸게 만들 것이라는 꿈에 훨씬 더 가까우리라는 믿음에서다.”

연구공동체 ‘수유+너머’ 연구원들이 공동집필한 현대사회론 강의 ‘모더니티의 지층들’의 서문에 나오는 말이다.

두 책은 이론의 대중화라는 문제의식만 공유하는 것이 아니다. ‘중국철학’이 유가와 도가의 지혜를 통해 환경 여성 몸 탈근대라는 현대적 문제를 새롭게 고민한다면 ‘모더니티…’는 마르크스, 푸코, 들뢰즈, 가타리의 이론을 통해 자본주의라는 근대와 현대를 분석한다. 동양과 서양으로 출발점은 다르지만 지향점은 근대와 현대에 대한 새로운 이해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또 그것을 ‘우리’의 관점에서 포착하자는 점도 같다.

‘중국철학’은 1990∼2006년 학술지에 발표된 동양철학 논문 중에서 ‘지금, 여기’의 고민을 반영하면서도 독창적이고 대중적인 17편을 선정했다. 거기에는 3가지 시도가 존재한다. 서구철학의 산물로서 근대성의 문제를 비판하면서 동양철학에서 대안을 모색하는 시도, 동양철학의 전근대성을 비판하면서도 그 대안을 동양철학 자체에서 끌어내려는 시도, 그리고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의 단점을 상호보완하면서 양자의 장점을 접목시키려는 시도다.

첫 관점은 유학과 자유주의의 연계를 서구화된 동양관(오리엔탈리즘)의 산물이라고 비판하며 자유주의적 ‘이성의 정치학’이 아닌 유교적 ‘감성의 정치학’의 회복을 주장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둘째 관점은 욕망을 억압의 대상이 아니라 긍정의 대상으로 바라본 제자백가 시대의 아카데미라 할 ‘직하학’이나 종적 질서를 강조하는 유교 국가관에서 벗어나 횡적 윤리를 중시한 명대 양명학자 하심은의 자치공동체(취화당)의 조명에서 발견된다. 셋째 관점은 자식의 생산을 중시한 유가의 효 사상에 입각해 인간복제의 윤리적 정당성을 찾거나 서양의 인간중심주의와 도가의 생태중심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생태계 보전의 책임을 인간에게 지운 주자학적 생태관을 주목하는 것에서 볼 수 있다.

‘모더니티의 지층들’은 더욱 일관된 관점에서 자본주의가 어떻게 탄생하고 작동하고 변화하는지를 설명한다. 이 책은 근대성의 원리를 합리성, 계산가능성, 통제가능성의 삼위일치로 포착한다. 여기서 합리성은 보편적 합리성이 아니다. 수치화할 수 있느냐는 계산가능성에 기초한 합리성이다. 또 계산가능성의 확대가 가져온 ‘자연의 수학화’에 힘입어 그것을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는 통제가능성과 결부된 합리성이다. 계산가능성이 과학의 몫이라면 통제가능성은 기술·공학의 몫이다.

문제는 이 특수한 합리성의 추구가 계산할 수 없는 것까지 계산하도록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는 점이다. 재화를 화폐라는 단일가치로 계산하게 하고, 신분적 제약에 묶여 동질화할 수 없고 그래서 계산할 수 없었던 인간을 해방(탈코드화)시키는 대신에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라는 단 하나의 코드로 묶어버림(초코드화)으로써 노동의 상품화를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물이 바로 자본주의다.

필자들은 이 근대적 합리성과 그 결과물인 자본주의의 비합리성을 화폐 노동 아동 주택 경찰 생명복제라는 화두 속에서 집요하게 추적한다. 그리고 ‘근대의 극한’으로서 자동화와 정보화가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대중을 만들어줌으로써 거대 풍요 속에서 오히려 무한한 결핍을 생산하는 자본주의적 욕망의 비합리성을 깨닫게 해줄 것이라는 희망을 말한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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