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망각의 우물서 건진 우리소리의 ‘두레박’

  • 입력 2007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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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정가, 민요 분야에서 재야 명창으로 꼽히는 소리꾼 3명이 한 무대에 선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 박초선 명창의 집 마당에 모인 남혜숙 박초선 서현숙 명창(왼쪽부터). 이훈구 기자
판소리, 정가, 민요 분야에서 재야 명창으로 꼽히는 소리꾼 3명이 한 무대에 선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 박초선 명창의 집 마당에 모인 남혜숙 박초선 서현숙 명창(왼쪽부터). 이훈구 기자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린 지난 주말. 불도 때지 않은 쪽방에서 한 할머니가 지내고 있었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 산기슭에 있는 박초선(77) 명창의 집. ‘한국전통음악연구원’이라는 팻말만 뎅그렇게 걸려 있는 이곳에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후배 소리꾼들이 찾아왔다. 향제시조의 서현숙(68) 명인과 경서도소리의 남혜숙(66) 명창이었다. 이들은 모두 중요무형문화재(인간문화재)가 아닌 ‘재야의 명창’들이다.》

○ 15, 16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서 공연

이들이 15, 16일 오후 7시 반 서울 서초구 서초동 국립국악원 예악당 무대에 선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3인의 가인’이란 제목의 이 공연은 김여란제 춘향가, 유종구제 시조, 김옥심제 경서도 잡가 등 보전이 시급한 대명창의 소릿제를 들을 수 있는 기회다. 1만, 2만 원. 02-580-3333

“자네 스승(김옥심)은 내 친구였어. 목소리가 참 좋았지.”(박 명창)

세 명이 난롯가에 모이자 금세 분위기가 살아났다. 서 명인이 “김옥심 선생님의 소리를 잇는 분이 계셔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자 남 명창이 “선생님께서 뭐라 말씀하실지 걱정”이라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박 명창은 판소리의 전설적인 명창 박록주, 김여란의 제자이며 서 명인은 유종구의 수제자로 1967년 전국 가곡시조 경창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향제시조의 대표주자다. 남 명창은 경서도소리 명창 김옥심의 서도잡가, 경기잡가를 잇고 있는 제자다.

중요무형문화재 제도에 따라 예능 보유자로 지정된 사람만이 정식으로 후계자를 양성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문화재로 지정이 안 되면 맥을 잇는 제자도 없이 ‘재야의 명창’으로 남게 된다. 남 명창은 “1975년 김옥심 선생님이 문화재 지정이 안됐을 때 제자들이 거의 다 떠나갔다”고 회상했다.

국악평론가 김문성 씨는 “현재의 무형문화재 제도는 종목보다 사람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문제”라며 “한 유파에서 문화재 보유자를 내지 못하면 전승자가 끊겨 오히려 종목의 획일화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 창작민요 ‘그것도 멍텅구리’ 들려줘

“판소리는 말을 길게 하면 노래가 되고, 걸음을 멋있게 걸으면 춤이 되는 거야.”

이번 공연에서 화제는 단연 박 명창의 건재다. “언제 적 박초선이냐”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국악계에선 그가 타계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박 명창은 판소리, 무용, 가야금, 아쟁, 시조창 등에 두루 능해 1950년대 명창의 반열에 올랐다. 1970년 여성 소리꾼 최초로 판소리 완창 공연을 했으며, 판소리꾼 최초의 석사 명창(단국대 국문과) 등으로 화제를 몰고 다녔다.

22년 동안 ‘김여란제 춘향가’ 보유자 후보로 남아 있는 박 명창은 인터뷰 말미에 창작민요 ‘그것도 멍텅구리’를 들려주었다. 자신의 판소리 일생이 담긴 노래였다.

“온 곳도 모르는 인간이 갈 곳을 어떻게 안단말가/갈 곳도 모르고 사는구나∼/그것도 멍텅구리//올적에 빈손으로 온 인간이 갈 적에 무엇을 가져갈까/공연한 욕심만 부리누나∼/그것도 멍텅구리//세계적 학자라 하는 이 모든 걸 다 안다고 해도/자기가 자기를 모르는구나∼/그것도 멍텅구리.”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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