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응자 태권V… ‘카수’ 이소룡… 대중문화 영웅 비틀기

  • 입력 2007년 3월 12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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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보트 태권 V’ ‘이소룡’ 등 대중문화의 우상들이 미술관으로 왔다. 그것도 옛 모습 그대로가 아니라 때로는 우스꽝스럽고 때로는 비틀어진 이미지로. 어떤 때는 기존 이미지에 ‘똥침’을 놓고 난장을 펼치기도 한다. 서울 중구 흥인동 충무아트홀 내 충무갤러리(02-2230-6600)에서 4월 19일까지 열리는 ‘팝 & 파퓰러-현대 대중문화의 우상들’전. 대중문화와 현대미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익숙한 팝아트이긴 하지만 한국인에게 친숙한 소재들이 미술관을 시끌벅적하게 한다는 점이 남다르다.》

■ 충무갤러리 ‘팝&파퓰러-현대 대중문화의 우상들’전

참여 작가는 성태진 유영운 신창용 전상옥 조은영 씨 등 5명. 성태진 씨의 주제는 ‘나의 일그러진 영웅, 태권 V’다. 어릴 적 로봇 태권 V를 우상으로 여기고 자란 그는 청년들의 실업이나 사회 부적응 문제를 태권 V에 오버랩시켰다. 지구를 지키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태권 V가 다른 것을 익히지 못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낙장불입’ ‘자력갱생’ ‘살수대첩’ 등 그런 태권 V의 현실을 통해 영웅의 추락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현대 사회의 비정함을 들춘다. 서울대 공대를 그만두고 뒤늦게 미술의 길로 들어선 작가의 이력도 작품에 중첩된다.

신창용 씨는 이소룡에 기댄다. 힘을 숭배한다는 그는 “이소룡 형에게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그가 꼽는 3대 ‘싸나이’는 영화 ‘매드 맥스’의 멜 깁슨, ‘황야의 무법자’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그리고 이소룡이다.

그의 회화 ‘블루스 리스 밴드’ ‘피플’ 등에는 이소룡이 초인적인 힘을 가진 이로 등장한다. 작가도 그 속에 있다. 그는 “내가 선택한 그와 함께 있고 싶은 욕구와 내 육체가 없어지는 날이 오더라도 그림 속에서 우리는 영원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독한 숭배다.

유영운 씨는 스티로폼 몸체 위에 잡지나 전단지를 오려 붙인 조각 작품으로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등 만화 속에서 지구의 평화를 지켜온 ‘슈퍼 히어로’를 한껏 조롱한다. 배트맨은 우스꽝스러운 모습과 추한 얼굴, 불균형한 몸매를 가진 ‘배드맨(badman)’으로, 원더우먼은 지구를 지키기는커녕 제 몸 하나도 일으키지 못할 정도의 비만형 ‘미디어우먼’이 돼 버렸다. 회화를 하다가 3년 전 조각으로 선회한 작가는 “거대 미디어가 반복 생산하는 캐릭터들의 이미지에 매몰돼 사는 현대인의 현실을 직시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팝 아트 부문에서 한국적 소재의 도입을 시도한 조은영 씨도 특이하다. 그는 전통 회화에 대중문화 스타의 사진들을 콜라주 작업으로 접목시켰다. ‘궁중한류모란도’는 궁중모란도의 배경 아래 한류 스타의 사진을 넣었다. ‘일월오봉도-김기덕 감독님 참! 잘했어요, 상(賞)’은 옛날 임금의 뒤에 늘 있었던 ‘일월오봉도’에 김 감독을 치켜 세우는 글씨를 썼다. 김 감독을 왕의 반열에 올린 셈이다. 조 씨는 “개인적으로 가장 뛰어난 감독이라고 본다. 그렇다고 김 감독에게 어떤 답신을 받은 적은 없다”며 웃었다. 국민대 미술학부 겸임교수인 그는 동국대 사회교육원에서 민화를 공부하고 있다.

전상옥 씨는 화려하거나 성적으로 어필하는 여성 상품 광고 이미지를 회화 기법으로 평면에 옮겨놓았다. 광고 사진을 그림으로 복제함으로써 광고 이미지의 진실성을 묻고 있다.

이번 전시는 뮤지컬 전용극장으로 자리잡고 있는 충무아트홀에서 젊은 뮤지컬 팬들을 전시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기획전이다. 충무아트홀 측은 “기존 화랑이나 갤러리와 달리 충무아트홀의 종합 문화시설을 상호 연계해 시너지 효과를 내는 기획전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허 엽 기자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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