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가는 책의 향기]따뜻한 선생님이 되어주렴

  • 입력 2007년 3월 10일 02시 59분


코멘트
From:아나운서 황정민

To: H에게.

네가 선생님이 되었다니 정말 놀랐다. 너는 유달리 장난도 심하고 개구쟁이여서 선생님은 정말 너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선생님은 학생 입장에서는 무섭기도 하고 사랑받고 싶기도 하고 참 오묘한 존재야. 난 선생님들이 좀 대하기 어렵더라. 아마 어렸을 때 일 때문인가봐. 내가 초등학교 때 선생님한테 뺨을 맞았거든. 그러고는 집에 와서 딴 얘기는 안 하고 아침마다 학교 가기 전이면 화장실에 쪼그리고 앉아서 “엄마, 나 배 아픈데 학교 안 가면 안 돼?” 그러면서 전에 안 보이던 행동을 하더래. 이상하게 생각한 엄마가 학교로 찾아가셨더니 선생님께서 내 뺨을 때렸다고 말씀하셨대. 선생님과 우리 반 반장 어머니는 서로 친구였고 내가 반장 집에 가서 놀다가 촛불놀이를 해서 불낼 뻔했다고 반장 어머니가 혼내주라고 그랬다는 거야.

난 단지 정전이 돼서 촛불을 켜면 되겠다고 말한 것뿐이었고 우리는 사실 그날도 별일 없이 재미있게 놀다가 헤어졌거든. 아마 선생님이 나에게 잘못했다고 얘기하니까 어린 생각에도 내가 큰 잘못을 했다고 생각했고 다른 아이들 앞에서 뺨을 맞은 게 너무 창피스러워서 집에 와서 제대로 얘기도 못했던 것 같아. 그렇게 내겐 선생님이 절대적인 존재였어.

아이들의 마음은 어른들이 이해하기 참 어렵지. 가냘프기도 하고 섬세하기도 해서 상처 주고 나서도 모르는 채로 지나가기 쉽지만 한번 닫힌 마음의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잖니. 돌이켜 생각해 봐도 아홉 살짜리 어린아이가 얼마나 큰 잘못을 했다고 다짜고짜 교실에서 불러 일으켜 뺨을 내리쳤을까 이해가 안 가기도 해. 그냥 그렇게 그때의 상처는 상처로 남아 있지.

얼마 전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라는 책을 보다가 왈칵 눈물이 나더라. 글은 평범한 편인데 진실함이 마음을 움직인다고나 할까. 문제아 데쓰조가 선생님의 지치지 않는 사랑에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그린 글이거든. ‘내가 만난 아이들’에서도 역시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훨씬 긍정적이고 낙천적으로 삶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줘. 무거운 인생을 짊어진 아이일수록 너그럽고 고통스러운 인생을 사는 아이일수록 상냥해. 아이들에게는 스스로 성장해 나가는 힘이 있고 교육이라는 것은 단지 그것을 도와주는 것이라는 작가의 생각이 담겨 있는 책이지. 무덤덤하게 읽어 내려가다가 갑자기 마음이 무장해제당하는 느낌이야.

정민 교수님이 쓴 ‘스승의 옥편’에서도 선생님의 이야기를 다룬 부분이 있는데 이 책에는 제자가 본 스승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어. 세상 사는 소소한 이야기 속에 스승의 가르침을 써놓은 구절이 마음에 와 닿더라.

부디 아이들에게 따뜻한 선생님이 되어 주길 바란다. 여린 가슴에 상처받지 않게. 뭐 사람이 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그런 일을 할 수도 있지만 네 진심이 잘 전달될 수 있게 찬찬히 잘 살펴보고. 겉으로 생채기 나는 건 금방 알 수 있고 아물어 가는 과정도 볼 수 있지만 마음의 상처는 잘 보이지도 않고 치유도 더디잖니. 너는 잘할 거야. 힘내라. 힘!

■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하이타니 겐지로·햇살과나무꾼)

■ ‘내가 만난 아이들’(하이타니 겐지로·햇살과나무꾼)

■ ‘스승의 옥편’(정민·마음산책)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