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쓴맛 나는 유머…‘그림 형제 최악의 스토리’

  • 입력 2007년 3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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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형제 최악의 스토리/루이스 세풀베다, 마리오 델가도 아파라인 지음/권미선 옮김·268쪽·8800원·열린책들

언뜻 보기엔 정말 ‘최악의 스토리’ 같다. 칠레의 대표작가 루이스 세풀베다와 뛰어난 우루과이 작가 마리오 델가도 아파라인이라는 콤비가 만들어낸 ‘그림 형제 최악의 스토리’.

동화작가 그림 형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남미의 파야다(음유 시) 가수라는 카인과 아벨 그림 쌍둥이 형제의 이야기다. 이 형제의 삶을 이야기해 주는 서문은 가공의 인물인 호세 사라예보가 썼다.

소설은 두 교수가 주고받는 16통의 편지로 이루어졌다. 소설 속 주인공인 칠레의 폰 클라치와 우루과이의 카스테야노스 교수는 편지를 통해 그림 형제의 일생을 추적하기로 한다. 세풀베다와 아파라인은 10여 차례 e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작품 속 편지를 한 통씩 완성했고, 책을 마지막으로 손질할 때에야 직접 만나 작업했다.

그림 형제 얘기라지만 읽다 보면 어리둥절하다. 그림 형제 얘기와 상관없는 에피소드들이 이어진다. 마약을 실은 배가 난파되면서 인근 해협의 동물들이 마약에 취해 짝짓기에 열을 올린다는 황당한 얘기부터, 죽어도 우편배달부만 하겠다고 주장하다가 결국 실속을 찾아 미국 제국주의에 앞장선 회사에 고용된 남자, 라틴아메리카의 군부 독재에 맞서 싸우면서 떠돌아다니는 서커스단 등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얘기들도 적지 않다. 부두 부랑자가 기르는 개 ‘하이데거’나 돈 떼먹고 도망치는 한량의 친구라는 ‘프랭크 시내트라’ 같은 유명인의 이름이 별 볼일 없는 캐릭터에 붙은 것도 당혹스럽다.

‘모름지기 소설은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스토리 라인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에게 이 소설은 ‘최악’일 것이다. 웃기긴 하지만 뜬금없는 에피소드들과 그림 형제의 인생이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일까? 마르케스나 보르헤스 같은 남미 작가 특유의 환상적인 서사 구조에 익숙해진 이들에게도 이 소설은 당혹스러울 듯하다.

“소외를 재미있게 그려낸 것인가”라는 칠레 일간지 기자의 질문에 세풀베다는 “불행한 사람들도 웃을 준비가 되면 늘 이기는 법이니까”라고 답했다.

작가들이 ‘최악의 스토리’에서 보여 주는 것은 우리가 어떤 세상을 살아가는가 하는 것이다. 남미 작가답게 있는 그대로의 묘사가 아니라 환상을 덧입히면서 이야기에 쓴맛 나는 유머를 칠해 놓는다. 소외됐지만 힘을 다해 살아가는 곳이 세상이라는 뜻이다. 원제 ‘Los Peores Cuentos De Los Hermanos Grim’(2004년).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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