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엄마’는 매니저 아닌 친구랍니다

  • 입력 2007년 2월 2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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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하자마자 자녀 양육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엄마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엄마는 조언자일 뿐이어서 자신의 삶도 돌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한 엄마가 그림을 그리며 아이를 가르치고 있다. 신원건  기자
임신하자마자 자녀 양육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엄마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엄마는 조언자일 뿐이어서 자신의 삶도 돌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한 엄마가 그림을 그리며 아이를 가르치고 있다. 신원건 기자
《엄마들의 아이에 대한 투자 노력은 임신과 태교에서부터 시작된다. 두뇌 발달과 태교에 좋다고 해서 십자수와 퀼트, 뜨개질이 유행하기도 한다. 생후 6개월 이전에 시작해야 좋다는 말이 떠도는 각종 창의력 및 운동력 증진 교육에도 만만찮은 교육비가 든다. 돈도 돈이지만 심적 신체적 부담이 버거울 정도다. 엄마들의 육아 전쟁은 아이가 태어나면 더 치열해진다. 내 아이는 다른 아이에 비해 발육 정도가 어떤지, 뭘 먹여야 하는지, 어떤 교육적인 자극을 줘야 하는지 등 고민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태아 영어교육부터 대입까지… ‘양육 스트레스’ 대처법

올해 결혼을 앞둔 대학원생 정지은(28·여) 씨는 선배나 지인들의 육아 경험담을 듣다 보면 덜컥 겁이 난다. 그는 “각종 태교는 물론 유아 체조, 교육 프로그램에서부터 ‘원어민 영어교사와 상담하려면 엄마도 영어를 잘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있지도 않은 아이에 대한 양육 스트레스를 벌써부터 받는다”고 말한다.

권수아(29·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씨는 두 돌 지난 아이를 데리고 음악 놀이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교실 분위기가 산만해 아이가 정말 배우는 게 있는지 의문이 가지만 수업이 끝나고 엄마들끼리 나누는 각종 육아 정보를 듣다 보면 경쟁에서 탈락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자녀가 초등학교를 거쳐 중학교에 진학하면 이제 공부는 대학입시와 직결된다. 공부가 아이의 인생을 가름한다는 생각에 엄마들은 아이들의 ‘맞춤 매니저’가 된다. 공부 전략, 학원 고르기, 시간관리, 건강관리, 아이의 친구관리 등까지 도맡아 챙기며 자식의 미래 개척에 온 힘을 쏟는다.

주부 이상희(가명·39·서울 종로구 부암동) 씨는 지난해 외동딸을 특수목적고에 보냈다. 주변에선 칭찬이 자자하지만 딸과 비교 대상이 되어 온 동서들의 자녀가 외국 유수 대학과 서울의 명문대를 다니고 있어 딸이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그는 집이 낡고 교통수단이 마땅치 않아 과외 선생님을 모시기가 어렵다고 생각하고 학교와 집 사이 중간 지점에 오피스텔을 얻어 공부방을 마련했다. 좀 더 좋은 성과가 나온다면 아이에게 이 정도는 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엄마들은 선생님에 대한 자잘한 소문도 챙기고 자녀와 경쟁하는 아이가 어떤 학원을 다니는지도 눈여겨본다. 엄마들 사이에 돈독한 관계를 쌓아야 하는 것은 필수다.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정보 거래에서 ‘왕따’를 당하면 아이에게 치명적이다. 엄마들이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 사는 주부 Y(38) 씨는 “아이의 능력이 곧 엄마의 능력으로 간주되는 세상이라 자녀가 성적이 좋은 엄마들의 위세는 대단하다”며 “때론 자존심을 굽히고라도 교육정보를 얻어야 하는 일이 많다”고 털어 놓았다.

옛 주부의 무게중심이 ‘살림’에 가 있었다면 요즘엔 ‘성공적인 육아’가 강조되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자녀가 경쟁에서 이탈(?)한 엄마들의 소외감은 크다.

황선희(가명·49·서울 강남구 대치동) 씨는 “아무리 뒷바라지해도 성적이 중하위권인 고교 2년생 아이가 마땅히 갈 만한 학원이 없다”며 “내 아이는 왜 공부를 못하는지. 나한테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괴롭고 속상하다”고 말한다.

아이에게만 주력하고 정작 자신의 인생은 없어 말년을 무의미하게 보낼까 두렵다는 엄마도 있다. 나모(42·경기 성남시) 씨는 중학생인 두 자녀를 지난해 9월 미국으로 조기 유학 보냈다. 힘든 형편이지만 아이의 미래를 위해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이라 믿었다. 그는 “노후 준비를 못해 말년에 고생하지 않을까 불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부모와 자녀가 서로 상승효과를 내어 슈퍼 맘, 슈퍼 키즈가 아니라 파워 맘, 파워 키즈가 되도록 해야 한다”면서 “엄마는 아이의 어시스턴트(조력자)지 매니저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종교 활동이나 다양한 취미 활동을 통해 엄마들도 자신의 일을 찾는 것이 아이에게 독립할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경애 사외기자 elleshe9@han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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