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878년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 초연

  • 입력 2007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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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서로 만나지 않도록 할 것, 설령 마주치더라도 대화하지 말 것.”

러시아 작곡가 차이콥스키(1840∼1893)를 후원했던 나데즈다 폰 메크 부인(1830∼1894). 그녀는 1876년부터 차이콥스키에게 매년 6000루블이라는 연금을 제공해 작곡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했다. 15년간 아낌없는 후원을 했지만 그들은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나는 당신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더 좋습니다. 당신의 음악 안에서 당신이 말하는 것을 듣고, 그 안에서 당신의 감정을 함께합니다.”

차이콥스키는 37세의 나이에 모스크바 음악원의 제자였던 안토니아 이바노브나 밀류코바와 결혼했다. 어릴 적부터 동성애적 기질을 갖고 있던 차이콥스키는 불행했고 결혼 2주 만에 모스크바의 차가운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극도의 신경쇠약으로 끝내 파경을 맞은 그를 격려하고 후원해 준 사람이 폰 메크 부인이었다.

폰 메크 부인은 11명의 자녀를 둔 46세의 미망인이었다. 러시아 광산 재벌의 부인인 그녀의 후원 아래 차이콥스키는 불후의 명작을 쏟아냈다. 특히 1878년 2월 22일 초연된 ‘교향곡 4번’은 불행한 결혼생활을 괴로워하던 시절의 산물로서 차이콥스키의 ‘운명교향곡’으로도 불린다. 차이콥스키는 폰 메크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들의 교향곡’이라고 표현했다.

“우리들의 교향곡은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주는 이 교향곡 전체의 핵심과 정수입니다. 이것은 운명입니다.…제2악장은 비애의 다른 일면을 보입니다. 이것은 일에 지쳐 쓰러진 자가 밤중에 홀로 앉았을 때 그를 싸고도는 우울한 감정입니다. 읽으려고 든 책은 그의 손에서 떨어지고 많은 추억이 샘솟습니다.”

차이콥스키와 폰 메크 부인이 주고받은 1100여 통의 편지는 서간집으로 출판됐다. 차이콥스키의 작곡 배경을 알 수 있어 음악사적으로도 귀중한 자료로 꼽힌다. 1890년 10월 폰 메크 부인은 “파산해서 더는 연금을 보낼 수 없다”는 편지를 보냈다. 차이콥스키는 갑작스러운 절교 선언에 크게 낙심했으며 1893년 11월 콜레라에 걸려 타계했다.

슈만과 클라라, 베토벤과 ‘불멸의 연인’과 같이 음악사에는 작곡가에게 열정을 북돋워 준 여인들이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차이콥스키와 폰 메크 부인의 사랑과 우정은 순수하다 못해 기묘하기까지 하다. 또한 ‘조건 없는 후원’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 1악장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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