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과 맞서라 구원을 얻으리라

  • 입력 2007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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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훈 감독의 ‘두려움과 구원에 관한 3부작’ 중 마지막 작품, ‘포도나무를 베어라’. 사진 제공 영화공간
민병훈 감독의 ‘두려움과 구원에 관한 3부작’ 중 마지막 작품, ‘포도나무를 베어라’. 사진 제공 영화공간
■민병훈 감독 ‘포도나무를 베어라’

민병훈 감독의 ‘포도나무를 베어라’는 신에 대한 순명과 세속의 사랑 사이에서 흔들리는 한 신학생의 내면을 그린 영화다. 수현(서장원)은 여자친구 수아(이민정)를 떠나 신학교 생활에 집중하지만 수아의 청첩장을 받고 마음이 흔들린다. 수현이 학교를 그만두려 하자 학장신부는 수도원 피정을 권한다. 수도원에서 수현은 수아와 닮은 헬레나 수련수녀(이민정)를 만나면서 더 큰 혼란에 빠진다.

영화는 사람들의 마음속 두려움의 그늘과 그 무게를 지켜본다. 수현과 수도원 원장신부, 헬레나 수련수녀 등 등장인물들은 내면의 두려움 때문에 부인하고(거짓말하고) 회피한다(도망친다). 문제에서 도망칠수록 더 큰 두려움에 봉착한다. 영화는 그들을 통해서 두려움과 맞서야만 내면의 평화와 구원이 있음을 암시한다. 수현은 여자친구의 죽음으로, 원장신부는 구역의 어린 소녀가 병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있는 상황으로, 그리고 헬레나 수련수녀는 죽은 애인과 똑 닮은 수현의 등장을 통해 내면의 두려움을 직시한다.

이런 상황은 민 감독의 전작에서도 재연됐다. ‘벌이 날다’에서는 옆집 부자 남자의 횡포에 맞서지 않고 회피해버린 남자의 두려움을, ‘괜찮아 울지마’에서는 바이올린 연주자로 오인되어 계속 거짓말을 해야 하는 남자의 두려움을 따라간다. 그의 세 작품이 ‘두려움과 구원에 관한 3부작’인 이유다.

3부작에는 각각의 인물이 두려움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현자(賢者)가 나온다. ‘포도나무…’에서는 수도원의 외국인 노(老)수사가 그렇다. 그는 수현에게 “가볍게, 깃털처럼 가볍게”라는 말로 화두를 던진다. “두려움에서 벗어나라, 그리고 고통을 비워라.” 그러나 궁극적 현자는 바로 수현의 하느님이다(그래서일까, 이 영화에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익스트림 하이 앵글 숏이 종종 등장한다).

민 감독의 영화는 한국 영화의 지형도에서 독특한 지점에 자리한다. 근래 한국 영화(시장)는 ‘대중성’이라는 코드에 집중돼 있다. 대중에게 친절하게 말을 걸고, 대중을 편안하고 즐겁게 하는 영화들만 선호된다. ‘대중성’이란 상업영화의 미덕이며 영화와 관객의 소통은 만드는 사람에게나 보는 사람에게 행복한 풍경이다.

민 감독의 영화는 스타보다는 개성 있는 배우들의 노력을 끌어내고, 블록버스터의 스펙터클이 보여 줄 수 없는 내면의 풍경을 펼쳐 내며, 신학교와 수도원 같은 종교적 공간으로 시선을 돌린다. 관념적인 주제어 때문에 접근이 쉽지 않은데 진지함과 가벼움이 영화 전체의 무게에 균형감각을 주었다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때문에 ‘포도나무…’는 한국 대중영화에서는 흔치 않은 영화적 체험을 제공한다. 이 영화를 통해 인간의 내면에 대한 통찰과 일상에서 구원의 징후를 포착하는 영화의 힘을 발견하는 것은 진정으로 ‘즐거운 체험’이 될 것이다. 22일 개봉, 12세 이상.

조혜정 영화평론가·수원대 연극영화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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