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92년 美그룹 뉴키즈온더블록 내한

  • 입력 2007년 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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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2월 16일 김포공항.

겨울 끝자락 쌀쌀한 날씨. 그러나 공항은 인산인해였다. 바깥에도 낄 틈이 없었다. 대부분 솜털도 가시지 않은 앳된 소녀들. 그들은 ‘오빠’를 기다렸다. 오빠의 뜻도 잘 모르는 오빠들을.

뉴 키즈 온 더 블록.

곱상한 외모에 뛰어난 춤. 노래도 들을 만했다. ‘보이그룹의 대부’ 연예기획자 모리스 스타가 키워 낸 5명의 청년. 불과 3, 4년 동안 약 7000만 장의 앨범을 판 대박 스타였다.

1980년대 서구 팝 음악계는 틴 아이돌(Teen Idol)의 백가쟁명(百家爭鳴) 시대였다. 듀런듀런과 왬, 아하, 티파니와 데비 깁슨. 순정만화에서 튀어나왔나. 잘생기고 어여쁜 가수들이 줄을 이었다.

뉴 키즈는 그중 최고의 웰 메이드 상품이었다. 18세 이하 백인 중산층 소년 이미지. 물망에 오른 500여 명의 신인을 추리고 추렸다. 랩과 펑크, 리듬앤드블루스 등 당대 인기 장르는 모두 섞었다. 댄디보이 터프가이 등 주어진 멤버 역할도 다양했다. 10대 소녀를 위한 ‘종합선물세트’였다.

호사다마라던가. 17일 올림픽체조경기장 공연에서 사고가 터졌다. 넘어지고 깔리며 100여 명이 다치고 1명이 숨졌다. 한국에서의 불운은 추락의 전조였다. 팀원 간의 갈등과 갖가지 추문. 4집 앨범이 참패하자 1994년 기획사는 곧바로 해산을 결정한다.

뉴키즈의 반짝 돈벌이는 오히려 한국에 영감을 줬다. 철저한 기획 아래 10대들이 좋아할 오빠와 누나를 만들었다. ‘에초티(10대들의 H.O.T. 애칭)’를 시작으로 11명, 13명 그룹도 나왔다. 음악계는 시작이었다. 연예계 전반이 상품성과 기획의 논리로 돌아간다.

이제 30대 후반이 된 뉴키즈. 앨범은 실패하거나 단역 연기자로 전업했다. 최고 인기였던 조던 나이트는 지난해 앨범을 내놓았지만 발표무대마저 없었다. 슈퍼마켓 귀퉁이의 초라한 부스에 앉아 앨범을 파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핀 꽃은 지고 영화(榮華)는 간다. 빛을 잃거나 어둠에 묻히는 것도 슬픈 별들의 생리. 최근 자살한 연예인이 많다. 인정이 말라가는 세상도 문제지만 삶을 버리는 안타까움은 없었으면…. 삼가 조의를 표한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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