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 “고향 맛-정 찾는 길… 벌써 5년 걸었네요”

  • 입력 2007년 2월 15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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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성찬과 여자친구 진수. ‘식객’은 음식 이야기와 함께 이들의 러브스토리도 곁들인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주인공 성찬과 여자친구 진수. ‘식객’은 음식 이야기와 함께 이들의 러브스토리도 곁들인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준비기간까지 포함해 제작기간 3285일, 취재를 위한 이동거리 1만6400km, 사진 8만2000장, 정보 기록 A4 용지 1066장, 취재수첩 164권…. 16일자로 1000회(82화)를 맞는 ‘식객’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다. 허영만 화백이 2002년 9월 본지 연재를 시작한 이래 현장에서 만나 취재한 식객만도 500명이 넘는다. 이호준 취재팀장과 함께 전국을 답사한 그는 14일 취재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허 화백은 “버스로 다니며 일상의 소재 하나하나까지 놓치지 않으려 했다”고 말했다.》

○ 서울, 경기-소고기와의 전쟁

10일 동안 현장에서 살다시피 취재해 그린 ‘소고기 전쟁’(12∼16화)은 서울 노원구 하계동의 한 고기집 지하에서 정형(소고기를 나누는 과정)을 취재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식객 취재팀은 “대통령이 와도 공개하지 않는 도축장을 취재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고 말한다.

사진을 찍다가 발각되면 도축장 작업이 모두 중지될 정도로 이곳 사람들이 외부에 공개되는 것을 꺼리기 때문. 120개의 소고기 부위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도 문제였다. 허 화백은 “일단 설명을 들은 후 열심히 메모를 해 놓고 일일이 사진을 찍어 와도 작업실에 돌아와 현상해 보면 다 ‘빨간 고기’여서 구별이 안 됐다”고 털어놓았다.

○ 전남-흑산도 홍어를 찾아서

‘홍어를 찾아서’(42화)에 나오는 어머니와 아들은 실제 서울 시내에서 삼합을 팔고 있다. 가장 큰 난관은 홍어잡이 배 타기. 일주일 이상 작업을 나가는 홍어잡이 배는 외지인을 잘 태워주지 않는다. 전남 흑산도에 도착한 취재팀은 모조리 거절당했다. 결국 홍어잡이 배를 탈수 있다는 홍도 2구역으로 가기 위해 해가 넘어가는 데도 산을 넘어야 했다.

○ 충남 서산-어리굴젓

‘어리굴젓’(81화)은 충남 서산 간월도 갯벌에서 굴을 채취하는 아주머니들을 만나 취재했다. 이 팀장은 “새벽부터 오후 6시까지 굴을 캐는 아주머니들이 허리 한번 안 펴고 일하다 이동할 때만 몸을 일으키는 모습이 놀라웠다”고 말했다. 아주머니들의 절절한 감정을 담기 위해 이들이 부르는 민요 ‘못살것네 왜 간월도에 태어나서 고생을 하게 됐나’도 넣었다.

○ 강원 강릉-순두부와 수면 부족

‘두부의 모든 것’(80화)은 두부 하나로 전국적 명성을 날린 강원 강릉시 초당동 이야기. 6·25전쟁 때 남자가 많이 사망해 여자들이 두부를 팔아 자식 교육을 시켰다는 곳. 취재팀은 잠과의 전쟁을 벌여야 했다. 순두부는 새벽에 만들기 때문이다. 허 화백은 “순두부를 만들 때 쓰는 장작불과 온돌방이 있어 거기서 잠을 잘 때 행복했다”고 말했다.

○ 부산-돼지국밥, 경북 포항-과메기, 제주-순대일기

‘돼지국밥’(75화)은 부산에 내려 일단 택시운전사에게 가장 맛있는 돼지국밥집을 물어보는 일로 시작했다. 서민의 음식으로 통하는 돼지국밥집을 부산진구 범천1동 평화시장 근방에 위치한 조방골목에서 찾아낸 뒤 일대 국밥 집을 모두 돌며 어머니와 아들 이야기를 구상했다. 설렁탕이 모범생이라면 돼지국밥은 반항아에 가깝단다. 과메기 이야기를 다룬 ‘구룡포 이야기’(27화)는 경북 포항에 사는 실제 기자를 모델로 했다. ‘순대일기’(73화)는 제주시 보성시장 내 명물 막창순대를 취재해 얻은 수확이다. 사투리를 번역하는 작업도 필요했다. 동네 아주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어도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몰랐기 때문. 쌀과 소금이 부족해 조, 보리가 들어간 제주순대는 간장에 찍어 먹는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됐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음식여행 종착지 나도 몰라… 북한-해외교포도 찾아갈것”

‘식객’은 음식에 대한 폭넓은 지식뿐 아니라 삶, 고향, 가족, 정 등 한국인의 정서를 담은 작품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서울 강남구 수서동 작업실에서 만난 허영만 화백은 1000회의 소회보다 갈 길을 먼저 생각했다.

―꼼꼼한 취재가 필요한 만화를 1000회나 진행하고 있는데….

“독자들의 ‘맛’을 맞추기 어려웠다. 단행본과 달리 신문은 보는 연령대가 넓기 때문이다. 가능한 한 전문용어나 한자를 빼고 지역 음식, 계절 음식을 안배했다. 최연소 독자가 여섯 살인데 식객 이야기를 달달 외우고 다녀 기뻤다.”

―1000회까지 일관되게 전달하려 한 메시지는 무엇인가.

“음식이 흔한 시대다. 겨울에도 수박을 먹으니…. 진정으로 맛있는 음식은 기다림이 배어 있는 요리다. 한입 베어 먹을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 음식은 제철에 먹어야 제맛이 난다. 어린 독자들이 엄마가 요리하는데 뒤에서 ‘왜 조미료 넣는 거냐’고 할 때 보람을 느낀다.”(웃음)

―식객을 그리며 가장 좋아하게 된 음식이 있나.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으면 너무 달아서 먹을 수 없다. 세계 식탁은 설탕에 지배당한다고 하지 않나? 여기에 조미료를 많이 넣으니 입안이 불쾌하다. ‘맛있음’이란 원재료가 가지고 있는 맛을 끌어내는 것이다. 원래 좋아하는 음식은 전어하고 정어리다. 부산에 가서 돼지국밥을 먹었는데 참 맛있더라. 저녁에 퇴근하며 그거 하나에 소주 한잔하면 그만이다.”

―성찬의 음식 여행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동아일보가 그만두라고 할 때까지다.(웃음) 이제는 북한 쪽 음식을 해보고 싶다. 해외 교포들이 많이 있는 곳을 찾아가 거기서 전통음식이 어떻게 변했는지도 알아보고 싶다. 진수와 성찬의 관계를 어떻게 정리할지 고민이다. 총각일 때와는 달라질 것이다. 결혼을 하면 환경이 바뀌고 삶이 바뀌기 때문이다. 삶이 곧 음식 아닌가?”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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