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이 읊어주는 詩語들의 향연… 최승호 새 시집 ‘고비’

  • 입력 2007년 2월 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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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고비였다면 나에겐 아무런 두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눈도 귀도 코도 없이 나는 늘 삼매(三昧)에 빠져 있었을 것이고 돌의 혀가 있었다 해도 침묵했을 것이다/모래들이 흘러나오는 유방/붕괴된 궁둥이에서 흩어지는 돌 조각들.’(‘고비’에서)

사막은 그런 곳이다. 좀 전까지 나 있던 길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전 세계가 들어있는 지도가 한낱 종이 한 장에 불과한 곳. 수백 마리의 낙타, 수천 마리 양의 죽음에도 무심한 곳.

최승호(53) 시인은 지난해 5월 열흘 동안 몽골의 고비 사막을 여행했다. 여행 중 쏟아낸 72편의 시를 묶어 시집 ‘고비’(사진·현대문학)를 냈다.

아름다운 회화적 이미지로 잘 알려진 최 시인. 그러나 사막에서 그의 시는 달라졌다. 적요한 공간에서 시인은 소리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덜컹거리는 차의 바퀴 소리, 바람 소리, 낙타의 발걸음 소리…. 언어를 빚는 시인은 소리에서 리듬을 찾아냈다.

‘고비에서는 고비를 넘어야 한다/뼈를 넘고 돌을 넘고 모래를 넘고/고개 드는 두려움을 넘어야 한다//고비에서는 고요를 넘어야 한다/땅의 고요 하늘의 고요 지평선의 고요를 넘고/텅 빈 말대가리가 내뿜는 고요를 넘어야 한다…고비에서는 없는 길을 넘어야 하고/있는 길을 의심해야 한다.’(‘고비의 고비’에서)

‘넘다’의 반복과 변형. 놀랍게도 시인이 발견한 것은 황량한 사막이 그 자체로 운율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는 단순한 듯 보이지만 리드미컬하다. 음악 같은 시어의 구조물에서 발견하는 것은 물론 아무 것도 없는 사막에서 고독과 정면으로 마주한 채 존재에 대한 성찰을 건져 올리는 시인의 모습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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