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백남준 1주기… 추모문집 발간-전시회 잇따라

  • 입력 2007년 1월 26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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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출세작 ‘TV 첼로’ 옆에 선 생전의 백남준. 동아일보 자료 사진
자신의 출세작 ‘TV 첼로’ 옆에 선 생전의 백남준. 동아일보 자료 사진
“뇌중풍으로 쓰러져 몸의 왼쪽 신경이 마비되었지만 자기는 몸의 절반만 있으면 충분하고 그전보다 오히려 새로운 아이디어가 더 샘솟는다면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쳤다. 심지어 한쪽 눈의 시력 상실에 대하여 외눈이라 더 잘 보인다는 농담까지 했다.”

가야금 연주자 황병기 씨에게 고교 동창 백남준(사진)은 기이해 보였다. 친구에게 선물한다고 흙 자루를 갖고 오거나 연주회 소감으로 “알프스에 가서 ‘삼국지’를 읽어야겠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엉뚱한 아이디어는 백남준을 세계 최고의 비디오 아티스트로 만든 힘이었다.

백남준 1주기(29일)를 맞아 다양한 추모행사가 마련된다. 생전의 백남준과 가까웠던 문화예술인 52명이 고인과의 추억을 회고하면서 쓴 글 모음 ‘TV부처 白南準’(삶과꿈)의 출판기념회가 29일 오후 6시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열린다. 이 문집에는 황병기 씨를 비롯해 이경성 임영방 오광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김홍희 경기도미술관장, 수필가 이경희 씨 등의 글이 실렸다. 백남준이라는 기인 천재에 대한 다채로운 에피소드를 만날 수 있다.

백남준에게서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에게 그림을 전달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손석주(당시 삼성전자 홍보담당 이사) 씨. 크레파스로 죽죽 긋고 색종이꽃 그림을 붙인 그림을 보고는 깜짝 놀라 ‘백남준을 무례하게 여길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고 그림을 쓰레기통에 폐기 처분한다. “미술 지식이나 감각 면에서 범인(凡人)인 저로서는 혁명적으로 앞서 가는 선생님의 첨단 예술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라고 뒤늦게 용서를 비는 손 씨.

가수 조영남 씨가 백남준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당신의 예술 행위는 단지 극소수만이 즐길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하자 질문을 받은 비디오 아티스트는 숨도 안 쉬고 ‘극소수’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사마천의 ‘사기’로부터 훑어 내렸다. 백남준의 세계적인 명성은 동서고금을 가로지르는 해박한 지식에서 비롯됐다고 조영남 씨는 돌아본다.

한편 29일 오전 11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본관에서는 백남준 1주기 추모식이 개최된다. 미국 뉴욕에 살고 있는 백남준의 부인 구보타 시게코 씨가 편집한 60분짜리 추모영상과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백남준 작품을 전시하는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또 백남준의 활동을 촬영해 온 사진작가 이은주 씨의 사진을 모은 ‘아 백남준’전이 29일부터 한 달간 서울 서초구 잠원동 필립 강 갤러리(02-517-9092)에서, 백남준의 실험예술의 토대가 된 1960년대 전위운동인 플럭서스를 조명하는 ‘백남준과 플럭서스 친구들’전이 29일부터 3월 18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 쌈지(02-736-0088)에서 열린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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