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耳順 넘기니 다시 동심이 찾아왔다”… 이양원 씨 개인전

  • 입력 2007년 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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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양원(63) 화백이 8년 만에 여는 개인전에 나올 작품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원로 화가의 오랜 공백 뒤 컴백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그림이 너무나 바뀌었다.

이 화백은 젊었을 때 여러 차례 국전 특선을 하면서 역량을 인정받았던 작가다. 김병종 서울대 교수는 도록 서문에서 “(이 화백은) 1970, 80년대에 인물화 산수화 화조화에 걸쳐 능수능란하게 물 종이 필묵과 채색을 다루며 왕성한 활동 역량을 보여 주었다”고 썼다.

그러던 이 화백이 10여 년 전 경기 양평군 개군면 하자포리 남한강변에 작업실을 차린 뒤 자신의 작품과 미술계의 움직임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탐색기에 들어갔다. 1999년 ‘아프리카 기행 그림전’ 이후에는 아예 작품 세계를 드러내 보이지 않았다.

25일∼2월 27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빛갤러리(02-720-2250)에서 열리는 ‘이양원 근작전’은 그의 기지개를 보여 주는 전시다. 전시작 40여 점의 제목은 ‘대자연의 합창’으로 통일돼 있다. 작품들은 모두 타이틀 그대로 유쾌한 합창을 들려준다. 자연 속에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동물과 식물, 나무와 벌레 등이 함께 화음을 빚는다. 이전 ‘기운생동’의 필치는 ‘생기발랄’로 바뀌었다.

“텃밭을 일구던 어느 날 낫으로 베려던 잡초에 꽃이 핀 것을 봤어요. 그 보잘것 없던 들꽃에게서 생명의 노래가 들렸습니다. 흠칫 주위를 둘러보니, 대자연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메뚜기 방아깨비 벌 등 벌레들이 나를 불렀고 그것들이 자연스럽게 화면을 채워갔어요.”

이 화백은 인물화의 대가로 통했다. 그런데 자연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자신에게 익숙했던 인간들이 작아졌다. 자신의 명예도 그림도 한없이 오그라들었다. 이윽고 마음이 비워지고, 욕심도 사라지자, 아이 같은 행복감이 스며들었다고 한다. 그 동심이 이번 그림의 요체다.

전시작들은 철없는 아이 마냥 화사하다. 온갖 나무와 풀 메뚜기 개구리 잠자리 나비 벌이 여기저기서 노닐고 있다. 벌거벗은 아이들도 쾌활하게 뛰논다.

“왜 늙으면 애 된다는 말 있잖아요. 그 말 맞아요. 나를 비우니 아이가 되고, 그러고 나니 붓이 쓱쓱 갑디다. 비우는 건 힘들지만 귀한 것입니다.”

이 화백은 지금 자신이 누리는 행복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듯하다. 그림에는 많은 요소가 들어가 있다. 화가들의 연륜이 쌓일수록 작품이 간명해지는 경향에 비하면 의외다.

이 화백은 “이제야 새로운 화업의 문턱에 들어섰기 때문”이라며 “자기만의 언어를 창출하는 게 과제인데, 앞으로 이를 찾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순을 넘긴 원로 화백이 이렇게 자신의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 잘나간다는 젊은 작가들이 곱씹어볼 만한 경구가 아닐지….

허엽 기자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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