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와 함께 문화산책]‘연주 리코딩 거부’ 뮌헨필 첼리비다케

  • 입력 2007년 1월 13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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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리비다케는 ‘기록의 예술’이 아닌 ‘순간(찰나)의 예술’이라는 음악의 본질에 가장 충실했던 지휘자였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첼리비다케는 ‘기록의 예술’이 아닌 ‘순간(찰나)의 예술’이라는 음악의 본질에 가장 충실했던 지휘자였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리코딩된 음악을 듣는 것은 브리지트 바르도의 누드사진을 들고 침대에 드는 것과 같다.”

루마니아 출신의 지휘자 세르지우 첼리비다케(1912∼1996)는 평생 연주를 음반에 녹음하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음악이 기계로 저장되는 순간, 그것은 ‘복사된 누드사진’일 뿐 살아 있는 몸이 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음악이든 삶이든 태어나서 소비되고, 결국은 사라지는 존재일 뿐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가 지휘한 뮌헨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사운드는 한동안 ‘전설’로만 통했습니다. 1996년 그가 타계한 후에야 비로소 뮌헨필 전용홀에서 자료용으로 녹음한 음원으로 만든 연주실황 전집(EMI)과 슈투트가르트 방송교향악단과 연주한 브루크너 교향곡집(DG) 등이 빛을 보게 됐습니다. 그는 원치 않았지만, 이 음반들이 사후에 그를 더 유명하게 만든 것은 아이러니입니다.

그가 만년에 몸담았던 뮌헨 필의 사운드는 극단적인 ‘느림의 미학’을 보여 줍니다. 특히 바다처럼 광대하게 출렁이는 브루크너 교향곡의 ‘아다지오’ 악장은 내적으로 깊이 침잠하는 명상적 분위기와 숭고한 아름다움의 극치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끝은 시작 안에 있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습니다. 티베트 불교와 동양의 선(禪) 사상에 심취한 그가 음악의 동시성과 찰나성을 설명하고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의 아들인 세르지우 요안이 만든 영화 ‘첼리비다케의 정원’이나 브루크너 ‘f단조 미사’ 리허설을 담은 DVD에는 그의 리허설 장면이 나옵니다. 그는 언제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선사(禪師)처럼 문답을 주고받는 것을 즐겼습니다.

“당신은 결코 같은 날 같은 방법으로 ‘헬로’라고 말할 수 없다. 인간은 살아 있기 때문이다. 음악이란 전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무언가를 가지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다. 시시각각 변화하고 움직이는 음악의 마술을 즐겨라!”

그는 음악이란 ‘아름다움이 아니라 진실’이라고 말했습니다. 스튜디오에서 여러 번 녹음해서 잘된 부분만 조각조각 붙여서 만든 음반은 아름답지만 가짜 음악이라는 것이지요. 그는 기계가 음악을 죽이고 있으며, 위대한 지휘자도 사라지게 한다고 경고했습니다.

그의 주장을 100% 수긍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최첨단 음악재생 기술이 발전하고 있는 요즘 그의 통찰력을 돌이켜 볼 필요가 있습니다. LP에서 CD, MP3로 기술이 발전할수록 왜 음악시장은 죽어 가고 있는 것일까요? 살롱에 모여 피아노 연주를 듣고, 저잣거리에서 판소리를 즐겼던 시대에 비해 오늘날 음악은 발전했을까요? 값비싼 오디오 소리가 최고인 줄 알다가, 어느 날 소극장에서 어린 학생의 피아노 소리에 전율을 느낀 적은 없습니까?

첼리비다케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푸르트벵글러를 대신해 베를린 필하모닉을 재건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지휘자였습니다. 그러나 베를린필은 푸르트벵글러의 후임으로 첼리비다케가 아닌 뛰어난 사업수완을 가졌던 카라얀을 선택했습니다. 카라얀은 수많은 음반 녹음으로 명성과 부를 얻었지만, 첼리비다케는 죽는 날까지 뮌헨필을 조련하는 일에만 몰두하며 은둔의 신비주의자로 남았습니다. 그는 삶의 고비 마다 티베트 승려 곤차의 말을 화두로 품고 살았다고 합니다.

“너는 한낱 바보에 불과하리니! 삶은 그런 것이 아니니, 다시 원점에서 출발하라!”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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