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도련님… 춤추는 춘향을 보시옵소서”

  • 입력 2007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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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시련’ 중에서 마지막 피날레 장면. 사진 제공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
‘사랑의 시련’ 중에서 마지막 피날레 장면. 사진 제공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
춘향役 타마라 투마노바. 사진 제공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
춘향役 타마라 투마노바.
사진 제공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
《2007년, 춘향이 춤춘다.

올해 무용계의 화두는 단연 ‘춘향’이다.

우리 고전 ‘춘향’을 소재로 한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 그리고 핀란드 국립발레단 내한 공연 등 각기 다른 세 편의 발레 공연이 잇따라 무대에 오른다.

세 작품 모두 국내 초연작.

무용계에서는 “올해는 춘향의 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 중 가장 관심을 모으는 작품은 역시 국립발레단이 동아일보와 함께 내놓는 춘향이다. 국립발레단은 세계적인 안무가 미하일 포킨이 춘향전을 토대로 만든 발레 ‘사랑의 시련’을 71년 만에 복원해 10월 31일∼11월 4일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한다.

1936년 모나코 몬테카를로에서 포킨이 초연한 뒤 유럽과 미국에서도 공연된 ‘사랑의 시련’은 지난해 말 전체 리허설 장면을 담은 동영상 자료를 본보가 미국 뉴욕에서 발굴함으로써 무대 복원이 가능해졌다.

국립발레단은 포킨의 안무와 모차르트의 음악은 그대로 사용해 최대한 원작에 충실하되 포킨의 원작에서 나타난 의상과 무대의 중국적 색채는 한국적인 분위기로 바꾸기로 했다.

박인자 국립발레단장은 “포킨 특유의 매우 섬세한 안무 및 움직임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국립발레단 측은 러시아에서 포킨의 계보를 잇는 안무가를 트레이너로 초빙할 것”이라며 “현재 러시아에서도 볼쇼이 발레단 출신의 유명 발레리노 안드레스 리에파가 포킨 작품들을 복원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어서 그쪽으로도 알아보고 있다”고 밝혔다.

리허설 동영상을 통해 확인된 ‘사랑의 시련’은 28분 분량. 이는 포킨의 대표작이자 20세기 걸작 발레인 ‘페트루시카’ ‘레 실피드’와도 공연 시간이 비슷하다.

박 단장은 “포킨의 작품 중 공연 시간이 30분 안팎인 발레들은 단독으로 무대에 올려지기엔 짧기 때문에 흔히 2, 3편이 묶여서 공연된다”며 “국립발레단도 ‘사랑의 시련’과 포킨이 안무한 다른 발레 작품을 함께 공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발레단은 ‘사랑의 시련’과 함께 공연할 작품으로 50분 분량의 ‘셰헤라자데’와 죽어가는 백조의 애잔한 정서를 예술적으로 표현한 3분 20초 분량의 걸작인 ‘빈사의 백조’를 검토하고 있다.

당초 국립발레단은 올해 ‘춘향’을 소재로 한 컨템퍼러리 발레를 선보이겠다는 계획 아래 러시아의 유명 안무가 보리스 에이프만과 접촉 중이었으나 이번에 포킨의 춘향이 발굴됨에 따라 이 작품을 먼저 선보이기로 결정했다.

포킨의 ‘사랑의 시련’을 핀란드 국립발레단이 리메이크한 또 다른 버전의 ‘사랑의 시련’도 무대에 오른다. 성남아트센터는 올해 말경 핀란드 국립발레단을 초청해 ‘사랑의 시련’ 내한 공연을 추진 중이다.

춘향의 이야기는 예전에도 영화부터 무용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인기 소재로 쓰였다. 춘향을 소재로 창극, 오페라, 현대무용, 발레, 뮤지컬 등 다섯 장르의 대본을 썼던 원로 평론가 박용구 씨는 “‘춘향’이 갖고 있는 드라마틱한 구조는 작가나 연출가가 어떤 식으로 주물러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며 “포킨이 춘향을 발레로 만든 것도 이런 점에 끌렸기 때문일 것이고, 이는 춘향의 이야기가 우리 고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보편성을 갖고 있음을 증명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단장은 “무용에서도 춘향은 매우 매력적인 소재”라며 “‘일단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주제인 사랑을 토대로 하고 있는 데다 다른 발레 작품들에서 흔히 볼 수 있듯 선과 악의 대비가 뚜렷한 이야기 구조여서 작품화하기에 쉽다”고 말했다.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도 “춘향에서 등장하는 그리움이나 기다림이나 갈등과 같은 추상적인 감정들은 무용으로 표현하기에도 적합하다”며 “사랑을 주제로 남녀 주인공의 아름다운 파드되(2인무) 등을 구성하기에도 좋다”고 설명했다.

유니버설발레단도 올해 5월 11∼13일 경기 고양시 아람누리 개관 공연으로 창작발레 ‘춘향’을 초연한다. 총 2막으로 이루어질 ‘춘향’은 지난해 6월 1막만 먼저 맛보기(쇼케이스)로 선보였고 올해 2막을 포함해 완성된 공연을 무대에 올리는 것.

한편 발레는 아니지만 유니버설발레단의 ‘춘향’에 영향을 준 작품인 배정혜 국립무용단장 안무의 한국창작무용 ‘춤, 춘향’도 춤극으로 모습을 바꿔 9월 30일부터 10월 7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오른다. 현대무용인 안은미의 ‘춘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20여 일간 유럽 각국 투어 공연에 나선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71년 만에 복원될 ‘사랑의 시련’… 원작 누가 만들고 누가 출연했나

‘발레神’ 니진스키 공연 안무… 모던 발레의 아버지

미하일 포킨(1880∼1942)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의 세계적인 안무가로 ‘모던 발레의 아버지’ ‘20세기 발레의 창시자’ 등으로 불린다. 그는 9세 때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황실발레학교에 입학했다. 이후 18세 때 마린스키극장에서 수석 솔리스트로 활동했고 22세 때 최연소 발레학교 교사가 됐다.

포킨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당시 유럽을 뒤흔든 발레단인 ‘발레 뤼스’(러시아발레단). 프랑스에서 발레 뤼스를 이끌던 세르게이 디아길레프의 초청으로 1909년 파리로 건너간 포킨은 발레 뤼스의 수석 안무가로 활동하며 ‘불새’ 등 수많은 혁신적인 작품을 남겼다. 특히 ‘발레의 신’으로 꼽히는 전설적인 발레리노 바슬라프 니진스키를 위해 그가 안무한 ‘장미의 정령’ ‘페트루시카’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포킨은 1919년 미국으로 건너갔으나 1930년대 중반 다시 유럽으로 돌아와 발레 뤼스의 후신인 몬테카를로 발레 뤼스 등을 위해 7편의 새로운 작품을 발표했다. 아메리칸발레시어터 온라인발레사전에는 “포킨은 몬테카를로 발레 뤼스를 위해 ‘사랑의 시련’을 포함한 몇 편의 발레를 안무했다”고 소개하고 있어 이 작품이 당시 몬테카를로 발레 뤼스의 대표적인 레퍼토리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포킨이 숨진 뒤 그를 추모하기 위해 세계 각국의 17개 발레단은 그의 작품 ‘레 실피드’를 동시에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할리우드에도 진출한 20세기 초 스타 발레리나

할리우드 영화와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출연해 배우로도 활동한 세계적인 발레리나 타마라 투마노바(1919∼1996)가 미하일 포킨의 작품에서 ‘춘향’을 맡았던 사실이 확인돼 관심을 끌고 있다.

최근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는 러시아 출신 발레리나 투마노바가 ‘춘향’을 맡았던 사진을 처음 공개했다.

1939년 미국에서 출판된 ‘발레 사전(Book of Ballets)’에는 “‘사랑의 시련’에서 ‘춘향(Chung-Yang)’ 역을 맡은 투마노바”라는 사진 설명과 함께 투마노바의 공연 사진이 실려 있다. 사진 설명에는 공연 장소와 시기가 나와 있지 않지만 책의 출간 연도로 볼 때 ‘사랑의 시련’이 초연된 1936년부터 책이 출간된 1939년 사이에 공연된 것으로 보인다.

9세 때 처음 무대에 선 투마노바는 13세 때 안무가 조지 밸런친의 눈에 띄어 ‘몬테카를로 발레 뤼스’에 입단한 뒤 10대 초반부터 최연소 주역 발레리나로 인기를 모았다.

타티아나 리아보우친스카, 이리나 바로노바 등 당시 함께 활동한 비슷한 또래의 10대 초반 발레리나들과 함께 ‘베이비 발레리나 삼총사’로 불렸다. 그 후 700회 이상 무대에 서면서 세계적인 발레리노들과 호흡을 맞추었고 웬만한 레퍼토리는 모두 주역을 맡았던 스타 발레리나였다.

투마노바는 미국으로 건너간 뒤 영화 데뷔작 ‘영광의 나날들’에서 그레고리 펙의 상대역을 맡았고, 히치콕의 영화 ‘찢어진 커튼’에 출연하는 등 할리우드에서도 활동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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