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지금 어디에]자유분방-평등의식 강해…연대활동 익숙

  • 입력 2006년 12월 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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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세대’는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30대를 지칭하는 말로 10여 년 전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이들 상당수가 지금은 40대에 진입했지만 여전히 386으로 통한다.

김대중 정부에 이어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뒤 1980년대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정치권에 대거 들어가면서 386세대는 정치적으로 각광을 받게 됐고, 이후 386은 386 운동권 출신을 지칭하게 됐다.

386 운동권 중에서는 1985년 대학에 입학한 세대(85학번)가 주류로 분류된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이끈 주역으로서 학생운동을 대중화하고 이후 시민사회 노동운동의 근간을 마련했다는 이유에서다. 1987년에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를 발족시켰다.

1985년을 기점으로 학생운동에 북한의 주체사상이 ‘도입’됐다. 이후 학생운동권은 북한의 주체사상을 받아들인 민족해방(NL) 계열과 남한 독자 혁명을 주장하는 민중민주(PD) 계열로 재편된다.

NL은 북한의 통일전선전술과 비슷한 전술로 학생운동권을 장악하고 대중화했으나 그 핵심 지도부는 오히려 주체사상에 매몰돼 대중으로부터 스스로 멀어져 갔다는 시각도 있다.

386세대는 경제성장의 혜택을 받으며 성장했다. 곤궁 속에 성장한 선배 세대와는 라이프스타일 면에서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이들은 대개 권위, 제도에서 벗어나려는 자유분방한 성향을 갖고 있다.

경상대 사회학과 정진상 교수는 “대학시절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경험한 386세대는 세상을 변화시켰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늘 당당하고 자기주장을 강하게 내세운다”고 말했다.

386세대는 또 전대협 등 조직을 통한 운동 경험이 많아 횡적인 연대를 통한 집단적 행동에 익숙하다. 대학시절의 학생운동 경험을 바탕으로 시민단체나 정당 활동 등에 적극 나서고 있다.

386세대의 평균 교육수준은 예전에 비해 크게 높아졌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수준으로 중등교육을 받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라는 게 사회학자들의 설명이다.

여권 신장과 자유분방한 특징은 386세대의 높은 이혼율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1995년과 2000년 386세대에 해당하는 30∼39세, 35∼45세의 남자 이혼율은 전체 연령대 중 가장 높다. 1995년 30∼34세 여자 이혼율도 인구 1000명 당 8.6명꼴로 가장 높다. 당시 50∼55세 여성의 이혼율은 인구 1000명당 1.6명꼴이었다.

여성들의 활발한 경제활동으로 남녀 간 임금 격차도 줄어 1988년 처음으로 여자의 평균임금이 남자 평균임금의 절반을 넘어섰다. 운동권 출신인 한 인사는 “우리가 대학에 다닐 때부터 여자들이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며 “여성도 사회운동에 적극 참여하면서 여권이 함께 신장됐다”고 말했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다양해진 삶의 궤적… 달라지는 시각들▼

접지못한 변혁의 꿈 시민단체-사회담론에 ‘영향력’
날개펴는 새로운 꿈 CEO로… 법조인으로… ‘변신’

《386세대의 삶의 궤적은 다양하고 지금 세상을 보는 시각도 엇갈린다. 386 운동권도 대학 졸업 후 제 살길을 찾아 사회 각 분야로 흩어졌다. 대부분이 결혼과 함께 평범한 가장으로서 삶을 꾸려 가고 있지만 아직도 사회 변혁을 꿈꾸는 이도 있다.》

○ 시민단체 중심세력 형성

대표적 시민단체인 참여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의 지도부는 모두 386 운동권 출신이 차지하고 있다. 1989년 경실련이 출범한 이후 이들은 1990년대 초반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 시민단체협의회 등 연대활동을 시작하며 영향력을 키웠다. 소련의 붕괴 등 변화된 환경 속에서 진로를 고민하던 일부 386 운동권이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등의 실무진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참여연대의 김기식(서울대 85학번) 사무처장, 박영선(숙명여대 85학번) 사무처장, 이태호(서울대 86학번) 협동사무처장, 김민영(서울대 86학번) 협동사무처장 등은 초기부터 참여연대를 이끌고 있다.

녹색연합 3인방인 김제남(덕성여대 83학번) 사무처장, 김혜애(한양대 85학번) 정책실장, 최승국(한양대 85학번) 협동사무처장도 골수 운동권 출신이다. 경실련도 2003년 12월 박병옥(고려대 81학번) 사무총장이 자리에 오르면서 이대영(전남대 81학번) 사무처장, 고계현(국민대 85학번) 커뮤니케이션 국장 등 실·국장급을 386 운동권 출신이 장악했다.

386 운동권 출신의 시민단체 간부는 “386 운동권의 역동성이 시민단체의 중흥을 불렀고 386 운동권의 정치 지향성이 시민단체의 위기를 불렀다”고 말했다.

현 정부 출범 후 일부 시민단체 인사는 친정부, 홍위병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 법조계도 새로운 길

서울대 법대 82학번인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이 노동운동을 하다가 뒤늦게 1992년 사법시험에 도전해 합격한 것이 운동권에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문민정부 출범으로 사회운동의 좌표를 잃은 데다 생활인으로서 생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던 상황에서 사시 도전이라는 ‘길’이 생긴 것. 사시에 합격한 운동권은 대부분 변호사의 길을 걷고 있다. 이들은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이 있어 대개 판검사 임용에서 탈락했기 때문이다.

정대화(서울대 82학번) 변호사는 ‘선진화정책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을 지낸 장유식(서울대 83학번) 변호사는 1986년 분신자살한 서울대생 김세진·이재호 20주기 추모행사를 주도하기도 했다. 법무법인 ‘정세’ ‘산하’ 등에 운동권 출신 변호사가 많다.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간부 출신인 A 씨, 서울의 한 대학 총학생회장을 지낸 B 씨 등은 검사로 일하고 있다.

○ 문화계 뿌리 다지기

1980년대 이후 인문 사회과학 출판사를 중심으로 사회 운동세력의 근거지 역할을 했던 출판계는 386 운동권을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40여 개 인문·사회과학 출판사 대표 등의 모임인 ‘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386이 주축이다. 여기에 각 출판사의 주간, 편집장까지 포함하면 386의 수는 더 늘어난다. 출판계에 진출한 386은 우리 사회의 담론 형성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문·교양 전문 출판사인 휴머니스트의 김학원(서강대 81학번) 대표와 윤철호(서울대 80학번) 사회평론 대표, 이종원(서울대 81학번) 길벗 대표, 최봉수(서울대 81학번) 웅진씽크빅 대표, 바다출판사 김인호(고려대 84학번) 대표 등은 출판계에서 성공한 386 운동권으로 꼽힌다.

최근 386의 응집력이 두드러진 곳은 영화계다.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운동에 참여한 영화인 중 ‘올드보이’의 박찬욱(서강대 82학번), ‘괴물’의 봉준호(연세대 88학번), ‘밀애’의 변영주(이화여대 85학번), ‘접속’의 장윤현(한양대 86학번), ‘욕망’의 김응수(서울대 85학번) 감독이 386이다. 김응수 감독은 현재 김세진·이재호 추모 기록영화를 제작 중이다. 영화배우 정진영(서울대 82학번), 박철민(중앙대 85학번), 오지혜(중앙대 87학번) 등도 잘 알려진 386이다.

○ 자본가로 변신

학생 시절 타도를 외쳤던 자본주의의 한복판에 뛰어든 386도 늘어간다. 문용식 나우콤 사장은 서울대 국사학과 79학번이지만 ‘386 최고경영자(CEO)’의 맏형으로 불린다. 인터넷서점계의 강자인 알라딘의 조유식(서울대 83학번) 대표는 ‘강철서신’의 김영환(서울대 82학번) 씨와 함께 잠수정을 타고 방북까지 했던 주사파였으나 사업에 전념하고 있다.

이철상(서울대 87학번) 전 VK 대표는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전대협 의장 권한대행을 지낸 운동권으로 ‘386 벤처신화’를 창조하며 성공가도를 달렸으나 올해 7월 부도를 낸 뒤 권토중래를 모색하고 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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