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혁명…권력핵심 진입했던 386세대, 지금은

  • 입력 2006년 12월 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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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1980년대 회색빛 대학 캠퍼스에서 사회 변혁을 꿈꿨던 386세대 운동권들. 이들은 1987년 6·10항쟁을 통해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관철한 주역이었지만 사회주의 붕괴 후 한때 좌표를 잃은 채 방황하며 고민했다. 간첩사건에 연루되는 등 아직도 사회주의 이념을 버리지 못한 이들도 있지만 벌써 30대 후반∼40대가 된 386 대부분은 각 분야로 흩어져 사회의 허리를 형성하고 있다. 대학시절 평등 자주 통일의 의미를 뼛속 깊이 새긴 386들의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는 욕망이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 지지로 나타났다. 혁명을 꿈꿨던 386 운동권 출신의 상당수가 현 정부 출범과 함께 대거 권력의 핵심으로 진입했다. 386세대가 다시 주목을 받고 386이 노무현 정부를 분석하는 키워드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보좌하는 386 운동권 출신 청와대 참모진 중 15명이 국가보안법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가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386 운동권 출신 전직 청와대 참모진 10여 명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돼 명예회복 조치를 받았다.

본보는 1일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 입수한 ‘민주화운동 관련자 인정 통지서’ 자료를 분석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실형을 살았지만 민주화운동 인정 신청을 하지 않은 386 운동권 출신 참모진도 적지 않다. 현재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이상 258명 중 30명 이상이 각종 시국 사건에 연루돼 복역한 전력이 있는 386 운동권 출신이며, 퇴직자까지 합치면 70여 명에 이를 것으로 정치권 관계자들은 파악하고 있다.

또 본보가 행정관 이상 참모진 명단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구속 경험은 없지만 운동권 출신으로 분류할 수 있는 386 참모진은 11월 말 현재 100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4년 17대 총선 때는 대통령 탄핵 비판 여론에 편승해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동우회 소속 운동권 출신 12명이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했다. 열린우리당 당직자와 국회 보좌진, 유력 정치인 보좌역 등을 포함하면 386 운동권 출신 150여 명이 국회 안팎에서 활동하고 있다.

학생운동 당시 인맥을 바탕으로 현 정부 출범 후 조직적이고 집단적으로 청와대에 입성하거나 여당에 둥지를 튼 386 출신들은 ‘자주’ ‘개혁’ ‘과거사 청산’ 등 노무현 정부가 내세운 의제설정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노무현 정권은 ‘386 정권’으로 불린다.

민주화위를 통해 확인한 현직 청와대 참모진 중 학생운동 전과자인 이른바 ‘빵잡이’(386 운동권 출신들은 스스로 이렇게 부른다)들은 비서관 7명, 행정관 8명이다.

비서관 중에서는 박선원 안보전략비서관, 김택수 시민사회비서관, 김종민 국정홍보비서관, 최인호 부대변인 겸 국내언론비서관 등이 눈에 띈다. 또 허성무 민원·제도혁신비서관, 김충환 업무혁신비서관, 임상경 기록관리비서관 등이 구속 전력이 있는 참모다.

행정관 중에는 김현수 시민사회수석실, 정동수 경제정책비서실, 윤건영 오승록 비서실장실, 윤원철 정책실장실, 김진향 인사수석실, 김경수 제1부속실, 정종승 사회정책수석실 행정관 등 8명이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았다.

청와대의 386 참모진은 횡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열린우리당의 386 출신들과 긴밀히 협력하거나 경쟁하면서 개혁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주류 교체를 위한 다양한 정책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의 국정 운영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면서 386 참모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비등해지고 있다.

한 386 참모는 “우리는 노짱(노무현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보자는 생각만 했지 실제 우리가 직접 국가를 경영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면서 “솔직히 전혀 준비가 안 돼 있었다”고 말했다.

임현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386세대는 산업화에서 민주화로 넘어가는 데 역할을 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의 전망을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고 본다. 권력에 참여한 일부 386 출신의 폐쇄적 태도가 큰 문제였다”고 진단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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