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89년 체조 요정 코마네치 망명

  • 입력 2006년 1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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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Romania). ‘로마인의 말을 쓰는 사람과 땅.’

유럽에선 로마제국의 향취가 남은 이곳을 얘기할 때 세 사람을 빼놓지 않는다. 인간의 탈을 썼으되 인간이 아니란 말을 반드시 붙이며….

‘흡혈귀’ 드라큘라, ‘악마’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그리고 ‘요정’. 그 요정이란 올림픽 체조 사상 처음으로 만점을 받은 나디아 코마네치다.

뉴욕타임스는 14세 소녀를 가리켜 “탄력이 충만한 바비 인형”이라 했다. 하지만 그 정도 칭송으로 그칠 일인가. 사람들은 “인간의 몸을 빌려 나타난 체조 요정”(타임)이란 찬사를 접하고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체조경기장.

코마네치의 이단평행봉 점수가 발표되자 장내는 일순 술렁거렸다. ‘1.0.’ “누구도 완벽할 수 없다”(구소련 라티니나 코치)고 믿었던 체조계였기에 전광판에 9.99 이상의 점수를 표시할 준비를 하지 못했다. 10점 퍼펙트. 153cm 40kg의 요정은 모두 7차례 ‘1.0’(사실은 10.0)을 받고 3관왕에 오른다.

이후 세 차례 세계선수권을 제패하고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서 금메달 두 개를 추가했다. 조국은 ‘사회주의 영웅’이란 칭호를 선사했다. 부귀영화도 뒤따랐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 마지막으로 출전하려 했으나 공산권의 불참 선언이 나왔다. 부쿠레슈티 광장의 화려한 은퇴식과 함께 요정은 팬들의 곁을 떠났다.

5년 뒤인 1989년 11월 29일.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코마네치는 헝가리에서 다시 미디어의 무대 위에 오른다. 망명. ‘살아 있는 국보’로 애지중지하던 차우셰스쿠 정권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자유를 찾아 부와 명예를 버렸다”는 말을 남기고 적성 국가 미국으로 건너갔다.

소문은 무성했다. 차우셰스쿠의 노리개였다, 그의 아들 니쿠가 성폭행했다는 말도 나왔다. 함께 망명한 애인이 유부남으로 드러나자 유치한 사랑의 도피였다는 비아냥까지. 망명 후 수많은 남성과 염문을 뿌리자 미국 언론은 그를 요정이라 부르지 않았다.

드라큘라는 소설이 만들어 낸 허구였다. 차우셰스쿠는 형장의 이슬이 됐다. “집에 가 햄버거와 사탕을 실컷 먹고 싶다”던 꼬마 여자 아이는 40대 중년이 됐다. 요정도 악마도 그렇게 사라졌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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