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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10월 14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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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家·1, 2권)/바진 지음·박난영 옮김/311쪽(1권), 327쪽(2권)·각 권 9800원·황소자리
《문화대혁명 동안 나는 거짓말 속에서 나날을 보내며, 거짓말을 듣고 거짓말을 했다. 처음엔 거짓말을 진리라고 여겼지만 나중엔 점차 허위임을 알아차렸다. 처음엔 나를 ‘개조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고, 나중엔 나를 보전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처음엔 거짓말을 진실로 여기며 말했고 나중엔 거짓말을 거짓말로 여기며 말했다.
… 사람은 진실을 말해야 비로소 성실하게 살아갈 수 있다.》
“아무리 수천, 수만 송이 꽃으로 치장하더라도 거짓말이 진리로 변할 수는 없다. 이런 평범한 이치를 깨닫는 데 나는 매우 큰 대가를 치렀다.”
너무나 당연한, 해묵어 보이기까지 한 이 문장에 이르기까지 바진(巴金·1904∼2005)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문화대혁명 때 이성이 마비될 정도로 ‘사고의 개조’를 강요당했던 그. 10여 년을 시달리니 뻔히 보이는 거짓말도 진실인 것처럼 여겨졌다.
문혁이 끝난 뒤 모두가 악몽 같던 과거를 쉬쉬할 때, 바진은 “나는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던 지식인”이라고 소리 내어 고백한다.
중국 소설가 바진. 격동의 1900년대 중국사를 온몸으로 살아 내며 10여 편의 소설과 산문을 통해 삶과 시대를 기록한 작가다.
대표작 ‘가(家)’는 봉건 대지주 가정을 배경으로 제왕 같은 조부로 대표되는 구세대와 손자들로 대표되는 신세대의 부딪침을 묘사한 소설. 주인공 주에후이가 집안에서 벌어지는 온갖 부조리한 일을 고발하고 봉건제도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하는 과정이 작품의 큰 줄기를 이룬다.
‘가’는 1932년 출간 당시 중국 전역을 뜨겁게 달구면서 ‘신문학 최초의 베스트셀러’로 자리 매김 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여러 차례 거론되기도 했던 이 작가는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중국 언론들은 많은 지면을 할애해 ‘큰 별이 떨어졌다’며 추모하는 기사를 실었다.
‘매의 노래’는 바진 1주기를 기념해 ‘진화집’ ‘탐색집’ 등 다섯 권의 수상록에서 고른 산문을 묶은 선집이다.
산문들은 문혁 당시의 핍박을 견뎌 낸 바진의 성찰이 진솔하게 담겼다.
“당시 나는 진심으로 하루라도 빨리 환골탈태하여 정신개조의 대업을 완성하고, 지식인에게 씌운 오명의 작은 모자를 벗길 원했다”고 바진은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문혁이 끝난 뒤 지식인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자성하면서 그는 붓을 메스로, 빗자루로 삼아 마음의 피고름과 쓰레기를 후벼 파고, 쓸어 낸다.
아내와 자식을 위해 무조건 혹형을 참아내야 한다고 생각했고, 비판투쟁대회에 설 때마다 입을 다물고 마음으로 온갖 주문을 외웠고, 짧은 시기 자살도 생각했던 바진. 문혁이 끝난 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자문한 그는 붓을 들고 부끄러운 기억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을 통해 바진은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 기간 사람들이 잃은 것은 무엇인지, 살아남은 자들이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지를 탐색한다.
노작가는 굴복하지 않는 위인이 아니라, 유약하게 흔들리는 한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감추고 싶은 과거를 용기 있게 내보이는 바진의 행동은 진실의 위력이 얼마나 큰 것인지, 우리 사회 지식인의 역할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 준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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