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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9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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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절스트레스 장난 아니던데요”
자칭 타칭 ‘인천댁’인 차 씨는 ‘살림하는 남자’다. 장 담그는 일을 빼 놓고는 모든 일에 자신 있는 10년차 베테랑 주부다. 부드럽고 나긋한 목소리에 살가운 말투는 아줌마인지 아저씨인지 경계에 선 듯하다.
“주부들은 명절이 다가오면 우선 돈이 없어 걱정이고, 음식 준비에 시댁 식구 눈치 보랴 고단한 일이 많아 남편이 지원자가 돼 줘야 한다.”
명절이 다가오면 여느 주부처럼 스트레스를 느낀다는 차 씨는 올 추석에는 음식보다는 식구들이 모여 노는 프로그램에 신경을 쓰라고 조언했다.
“주부들이 음식 마련에 너무 매달리다 보니 스트레스가 쌓이는 거죠. 주부들을 일에서 해방시켜 주는 게 가족 모두가 행복한 명절을 보내는 지름길입니다.”
차 씨가 명절 주부 스트레스를 이해하기까진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한 출판사의 편집장을 지내다 30대 중반 창업을 결심하고 직장을 나왔다. 하지만 외환위기로 촉발된 경제난이 발목을 잡았다. ‘한두 달 놀면 되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그를 믿고 있을 수만 없던 아내가 취업 전선에 나섰다. 아내가 일자리를 찾자 그가 살림을 떠맡으면서 부부의 역할이 바뀌게 됐다.
○ ‘인천댁’별명… “주부가 직업”
“처음에는 ‘남자가 무슨…’이라며 버텼는데 녹초가 돼 퇴근하는 아내를 보니 도저히 놀고먹을 수가 없었어요. 당시 세 살. 다섯 살이던 아이를 돌봐줄 사람도 필요했죠. 처음 1, 2년은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싶어 유서까지 써 놓았어요.”
차 씨는 “막상 죽으려니까 ‘집안일 하기 싫어 죽는다’는 게 자살 이유치고는 너무 시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못할 게 뭐 있나’ 하는 생각에 마음을 돌이키니 집안일이 손에 잡혔다.
여느 주부와 다름없이 ‘가장’을 출근시키고 애들을 학교에 보내고 청소, 빨래, 장보기, 삼시 세 끼 밥 차리는 일에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10년이 훌쩍 흘렀다. 내공이 쌓이다 보니 인터넷으로 주부들과 수다로 스트레스를 풀 정도가 됐다.
차 씨는 주부사이트 미즈(www.miz.co.kr)에 ‘남자가 쓰는 주부일기’를 연재하는 청일점 회원이다. 3년 전부터 여성가족부의 양성평등 강사로도 활약하고 있으니 이젠 주부가 직업이다.
“집안일이란 게 ‘단순 쌩 노가다’죠. 어제 닦은 데 오늘 닦고, 오늘 닦은 데 내일 닦으니 시간이 이렇게 흘렀어요. 직장생활 할 때는 가사노동과 아내를 우습게 봤는데 얼마나 반성했는지 몰라요.”
○ 콩나물 값 모르면 정치하지 말라?
주부생활을 하면서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과 여성에 대한 편견을 깰 수 있었던 것이 차 씨의 큰 소득이다.
“예전에 아내가 했던 잔소리들을 내가 똑같이 하면서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남녀가 하는 일의 차이를 타고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생물학적 차이는 있을지언정 역할의 차이는 없다는 게 10년 주부생활의 결론입니다.”
그는 “나는 ‘여자는 남자보다 한 수 아래’라고 배우고 생각하며 자라 온 평범한 중년 남자였죠. 막상 살림을 해 보니 여자들이야말로 새 시대를 열어 나갈 자질을 타고난 사람들이란 결론을 얻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가사노동은 ‘남을 위한 노동’이라는 점에서 나눔과 베풂, 배려와 헌신이 필요한 미래적 인간형의 덕목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차 씨는 “이제 콩나물 값(이 주는 충격)을 모르는 사람은 정치를 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인천=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배부른’ 추석상 주문? ‘배고픈’사연 있었네
26일 오후 서울 노원구의 제사상차림 업체 ‘예듬’의 전화기가 쉴 새 없이 울려댔다.
인터뷰할 시간조차 없이 바빴던 김정환 사장은 전화가 뜸해지자 “한꺼번에 주문이 몰리면 배송에 지장을 줄 수 있어 200상 이상은 주문을 안 받기로 했다”며 활짝 웃었다.
서울 경기 지역에 있는 제사상차림 업체만 40여 개. 명절이면 업체마다 50∼100상씩 주문이 밀려든다.
제사상차림 업체를 찾는 사람들을 취재한 결과 예상과 달리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계층이 아니었다.
‘다모심’의 윤유영 사장은 “상류층은 가정부가 제사상을 차리는 게 보통이고 제사상을 주문하는 사람은 중산층 이하의 가정이 대부분”이라며 “명절에도 가게를 비울 수 없는 영세 자영업자나 이혼한 가정, 노부부 가정이 주고객”이라고 설명했다.
제일 까다로운 고객은 노부부나 혼자 사는 노인.
‘사임당’의 신원학 사장은 “노인들은 제사상을 남의 손에 맡기는 것이 탐탁지 않지만 여건상 어쩔 수 없이 주문하는 경우가 많다”며 “직접 가게에 찾아와 음식 상태를 꼼꼼히 따져 보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외국에 사는 자녀가 부모님 댁으로 주문을 하기도 한다. 또 몸이 아픈 할머니의 일을 덜어 주기 위해 할아버지가 제사상을 주문하기도 한다.
일하는 며느리가 제사상을 소홀하게 차리는 것이 불만스러운 할아버지가 직접 제사상업체를 찾아오는 경우도 꽤 있다고 업체 관계자들은 전했다.
예듬의 김 사장이 최고로 정성을 들인 제사상은 한 뇌성마비 환자가 주문한 것.
김 사장은 “작년에 경기 수원시에 사는 한 40대 뇌성마비 환자가 ‘돌아가신 부모님의 제사상을 한번도 차리지 못했다’며 1인용 제사상을 주문했다”면서 “제사상을 배달해 줄 때 그처럼 고마워한 고객이 없었다”고 말했다.
또 판잣집에 살면서도 꼬박꼬박 제사상을 주문하는 고객도 있다.
올봄 경기 고양시 ‘다례원’의 배달원은 제사상을 주문한 곳을 찾느라 몇 시간을 보냈다. 차가 들어갈 수 없는 골목길을 30분 넘게 올라간 끝에 쓰러져가는 다가구주택을 찾을 수 있었다. 다례원의 한 관계자는 “물 한 그릇 떠놓고 제사 지내야 할 듯한 형편으로 보이는 집에서 제사상차림을 시킨 것에 약간 놀랐다”고 말했다.
이 설 기자 s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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