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지식인의 대명사' 리영희, 독자와의 만남

  • 입력 2006년 9월 25일 15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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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저 청년, 대학생이죠? 몇 학번인가요? ("01학번"이라고 응답하자) 신세기 학번이네! 여기 잘못 온 거 아닌가? (웃음) 신세기 학번은 나를 알아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어."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교보문고 강남점 문화이벤트 홀. 진보적 지식인의 대명사인 리영희(77) 한양대 명예교수가 독자와 만나는 자리였다. 사회과학자가 서점에서 '독자와의 만남'을 갖는 경우는 드물다. 최근 50년간 발표한 저서를 집대성한 저작집을 내고 연구, 저술활동을 중단하겠다는 절필 선언을 한 리 교수를 만나러 앳된 얼굴의 대학생부터 50대로 보이는 독자까지 30여명이 자리를 함께 했다.

그는 요즘 근황에 대해 "(손을) 쥐는 생활에서 펴는 생활로 전환했다"고 설명했다. 연구와 집필을 중단했을 뿐 아니라 지난해부터 소장 장서를 분야별로 간추려 그에 해당하는 연구소에 모두 기증했다.

"11월 16일이면 뇌출혈로 쓰러진지 만 6년이 됩니다. 그만 멈추라고 하늘이 내려 보낸 옐로카드(뇌출혈) 덕분에 이제 관조하는 인생을 누리게 되어 흐뭇해요. 모든 것을 놓아버린 요즘처럼 제 얼굴빛이 맑았던 때가 없습니다."

그는 옛 소련의 반체제작가 솔제니친이 소련체제 붕괴이후 귀국할 때 "러시아의 젊은 세대들이 내 작품을 읽지 않고 내 이름을 모르는 것은 나로선 원래 바라던 대로 세상이 바뀐 것"이라고 말한 일화를 들려줬다.

"사실은 내가 솔제니친보다 2년 빨랐다구요. (웃음) 책에서 내가 말했던 것들이 상식이 되고, 더 이상 내 책이 팔리지 않아 인세가 '제로'가 되는 날이 나로서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 될 것입니다."

리 교수는 젊은이들에게 "자유와 권리를 장기적으로 변함없이 누리려면 책임을 다 해야 하며 더불어 사는 사람의 권리도 내 것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당부로 강연을 마쳤다.

굴곡의 시대를 직선으로 통과해온 원로 교수는 "이제 이대로 잊혀져도 기쁘다"고 말했지만, 독자들은 리 교수의 옛 저서를 들고 사인을 받으러 줄을 이었다.

유학을 준비 중인 독자 황재혁 (37)씨는 1977년에 출판된 '우상과 이성' 초판본을 들고 와 사인을 받았다. 그는 "94년 우연히 '역정'을 접한 뒤 이 선생의 저서를 모두 읽었다"면서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실증주의자인 이 선생의 그 누구보다 성실한 지식인의 자세, 진실된 정신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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