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뉴스는 쇼다… ‘무한미디어’

  • 입력 2006년 9월 23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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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한미디어/토드 기틀린 지음·남재일 옮김/352쪽·1만8000원·휴먼 앤 북스

미국의 좌파 사회학자인 토드 기틀린은 26년 전 뉴스가 실재 세계를 거울처럼 비추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가 적극적으로 구성해 낸 존재라는 주장을 펴 주목받았다. 1960년대 베트남전쟁 당시 미국 대학생들의 반전 운동에 대한 미디어의 왜곡 보도를 분석한 저서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The Whole World is Watching)’에서다. 그는 1980년 발표한 이 책에서 뉴스란 미디어와 다양한 취재원들 간의 끊임없는 타협의 산물로 헤게모니적 성격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 정보? 기분 전환 위해 뉴스 본다

미디어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에 주목했던 저자의 관심은 이제 미디어 홍수 시대에 사는 개인의 일상으로 옮겨간 뒤 ‘미디어는 감각이다’는 명제를 제시한다. 정보사회는 허구일 뿐이다. 미디어의 본질은 그저 자극적인 이미지와 소음들을 무제한의 속도로 쏟아내고 사람들은 이 감각의 급류에 휩쓸려 허우적대고 있다는 진단이다.

기틀린은 심지어 정보 전달 매체에서도 우리가 얻는 것은 감각일 뿐이라고 단언한다. 르윈스키 스캔들, 9·11테러, 지진, 기아, 홍수 등 미디어가 끝도 없이 보도하는 뉴스에서 사람들은 정보나 사실보다는 성적 흥분과 슬픔 공포 분노 연민 안심 불안을 반복해 느낄 뿐이다. 뉴스는 쇼이고 이벤트이다. 사람들이 뉴스에서 기대하는 것도 정보나 사실이 아닌 기분 전환이다. 그래서 미디어가 전하는 이미지가 연출된 것이라는 사실에 개의치 않는다.

사람들이 미디어의 자극에 온몸을 내맡기는 이유는 ‘계산의 시대’가 감정에 헌신하는 문화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계산 능력만을 극도로 추구하는 화폐경제사회에서 사람들은 그 무엇에도 감동하지 않는 존재가 된다. 이러한 무감동한 인간들이 그 보상으로 빠르고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흥미와 감동을 추구하게 돼 감각의 문화를 낳았다는 역설이다.

○ 우린 미디어에 빠져 살고 있다

미디어의 사실 왜곡에 분개했던 좌파 미디어학자는 이제 미디어가 공적인 삶을 해체한다고 걱정한다. 자극에 대한 끝도 없는 열광이 ‘공적인 삶의 속을 긁어내어 텅 비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푸트남이 논문 ‘나 홀로 볼링(Bowling Alone)’에서 분석했듯 TV를 많이 시청하는 사람일수록 투표율이 낮다. 인터넷 댓글놀이를 통한 활발한 정치 토론이 투표율로 이어진다는 보장도 없다.

그렇다고 인터넷도 휴대전화도 없이 살 수는 없다. 채널을 돌려버린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거스를 수 없는 미디어 급류에서 살아남을 방도는 이 책에도 없다. 저자는 미디어가 무언가를 매개하는 존재가 아닌, 우리가 그곳에 풍덩 빠져 살고 있는 환경임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에서 보여 준 깊이 있고 독창적인 문제의식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것이다. 하지만 기틀린의 미디어에 대한 고민의 진화를 확인하는 일은 흥미롭다. 원제는 ‘Media Unlimited’(2001).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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