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울트라 삼남매 미친듯 달렸다

  • 입력 2006년 9월 22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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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도 유단자인 삼 남매가 울트라마라톤 마니아가 됐다. 이들은 울트라마라톤과 인생이 닮았다고 입을 모았다. 왼쪽부터 안대용(55) 자용(53·여) 지용(46) 씨. 원대연 기자
검도 유단자인 삼 남매가 울트라마라톤 마니아가 됐다. 이들은 울트라마라톤과 인생이 닮았다고 입을 모았다. 왼쪽부터 안대용(55) 자용(53·여) 지용(46) 씨. 원대연 기자
《‘미친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했다.

6박 7일 동안 하루 한두 시간만 자며 600km가 넘는 거리를 달린다니.

그것도 나이 쉰 줄에 접어든 삼남매가….

안대용(55) 자용(53·여) 지용(46) 씨도 처음엔 그랬다.

2003년 9월 초 태풍 매미가 한반도를 강타했을 때, 비바람을 맞으며 뛰는 사람들을 TV에서 보고 이구동성으로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지금은 자신들이 ‘이상’해졌다. ‘울트라 마니아’가 됐다.

특히 삼 남매 중 맏인 대용 씨는 308km, 537km, 602km를 모두 뛰어 국내에서 보기 드문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영양바와 반딧불(안전용 불빛)은 챙겼지? 배낭 무게는 3kg이 넘지 않게 조절하고….”

14일 오후 서울 을지로의 한 아파트.

안씨 삼 남매는 이날 밤 10시에 출발하는 울트라마라톤 준비로 분주했다.

이번 대회는 14일 밤 강화도에서 출발해 17일 오후 경포대에서 끝나는 308km의 한반도 횡단이다.》

○ 삼 남매의 울트라 입문기

50km 이상을 뛰는 울트라마라톤에 삼 남매 중 가장 먼저 도전한 사람은 막내 지용 씨. 철인 3종 경기의 한 종목인 마라톤에 관심을 가지면서 울트라에도 욕심이 생겼다.

“2001년에 철인 3종 경기를 해 봤는데 마라톤 외에는 별로 관심이 안 갔어요. 그래서 하프와 풀코스 마라톤을 연습하면서 2003년 말 울트라마라톤에 도전했습니다.”(지용 씨)

지용 씨가 2002년 형에게 “하프마라톤을 신청해 놓았으니 달려보자”고 했지만 대용 씨는 거절했다. ‘몇 백 m도 달리기 힘든데 무슨 마라톤을 하느냐’는 것이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남산에 올라가 몇 바퀴 돌아봤다. 생각보다 숨이 차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해 2002년 춘천마라톤을 3시간 49분에 끊고 동생과 함께 울트라에 도전했다.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던 자용 씨도 결국 울트라에 발을 들여놨다. 삼 남매는 같이 100km를 뛰고 연맹에서 인정하는 정식 ‘울트라마라토너’가 됐다. 2004년 삼 남매는 308km에 도전하겠다며 제주도로 갔다. 가족들이 울면서 막았다.

“가족들이 ‘정말 죽으려고 그러느냐’며 뜯어말렸어요. 만류를 뿌리치고 경기를 끝낸 뒤 멀쩡하게 집에 들어가니까 모두들 할 말을 잃은 채 바라보더군요.”(자용 씨)

○ 검도와 울트라는 ‘찰떡궁합’

삼 남매가 울트라마라톤에 도전한 것은 14년간 쌓아온 검도 내공이 바탕이 됐다. 대용 씨와 지용 씨는 대한검도협회 공인 4단, 자용 씨는 3단이다. 삼 남매가 검도를 함께 시작한 것은 1992년. 형과 누나가 지용 씨가 운영하던 엔지니어링 업체에 합류하면서부터다.

“나이 먹어 같이할 수 있는 운동이 무엇일까 고민했어요. 회사 직원들이 무거운 기계를 들고 쩔쩔매는 것을 보면서 허리 힘을 키워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생겼지요.”

취미삼아 시작한 검도가 이제는 프로 수준이다. 올해 초부터 서울 송파구 송파청소년수련관에서 매주 화, 수, 목, 금요일 오전 6∼7시에 ‘새벽을 여는 검도’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삼 남매는 검도와 울트라마라톤이 ‘찰떡궁합’이라고 말한다.

“안(眼)법, 끈기, 체력이 필요한 검도에서 다리 운동은 전체의 60∼70%를 차지합니다. 마라톤을 위해서는 검도가 최상의 운동이라는 얘기죠. 우리가 두 운동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자용 씨)

다음 달 8일 열리는 울트라마라톤 세계대회 개막식에서 삼 남매는 검도 시범도 선보일 예정이다.

○ 인생은 울트라마라톤…

울트라마라톤에는 에피소드가 많다. 몇 백 km를 혼자 뛰다보니 엉뚱한 곳으로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넋이 나간 채 제자리에서 뛰면서 본인은 달린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다.

“작년 울트라마라톤에서 누나가 연습량 부족으로 고생하다 가까스로 대관령에 올랐습니다. 물집이 잡히고 힘들어해서 포기하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7km에 이르는 내리막길을 한달음에 달리더라고요. 누나를 본 다른 사람들이 덩달아 빨리 뛰어 모두 좋은 기록을 냈어요.”(지용 씨)

울트라마라톤에서 수 백 km를 완주하는 이들은 40∼50대가 대부분이다. 단순히 ‘체력’만 으로 해낼 수 있는 운동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일반 마라톤과 달리 밤 시간을 포함해 며칠 동안 계속 뛰기 때문에 체력이나 의욕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꾸준한 준비와 경험, 그리고 내가 왜 뛰는지에 대한 목표의식이 없으면 도중에 포기하기 쉽습니다. 이게 바로 인생이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대용 씨)

울트라마라톤에는 다른 동료들과 같이 뛰는 ‘동반주’라는 규칙도 있다. 처음 출전하는 참가자들을 위해 베테랑들이 처음부터 완주할 때까지 옆에서 같이 뛰는 것이다. 일반 마라톤의 페이스메이커와는 다르다. 기록도 완주도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 계속 옆에서 뛰고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게 동반주의 목적이다. 삼 남매의 꿈은 서울∼평양 220km 코스를 달리는 것이다. 2003년부터 연맹의 숙원사업으로 추진 중이지만 성사될지는 미지수다.

“우리 삼 남매는 70세까지는 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삼 남매가 같이 땅 끝에서 임진각을 거쳐 백두산, 그리고 유라시아까지 뛴다면 폼 나는 일 아닌가요.”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매년 1차례 이상 100㎞ 뛰어야 자격

‘극도의 더위(Extreme Heat) / 극도의 에너지고갈(Extreme Exhaustion) / 극도의 좌절감(Extreme Frustration) / 극도의 당황스러움(Extreme Confusion) / 극도의 기쁨(Extreme Joy).’

‘5E’의 경기로 불리는 울트라마라톤의 사전적 정의는 42.195km 이상을 뛰는 모든 마라톤을 지칭한다. 국내에서는 50∼602km까지 다양한 코스가 있지만 50km를 뛰는 것이 일반적이다.

울트라마라톤연맹이 인정하는 회원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년 한차례 이상 100km를 뛰어야 한다. 국내 울트라마라톤 마니아는 3000여 명으로 추산된다.

다음 달 8일에는 ‘2006 울트라마라톤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린다. 오전 6시부터 경기 하남시 미사리 조정경기장에서 제한시간 14시간을 두고 10km 코스를 10회 왕복하는 경기다. 이번 대회에선 국제울트라러너스협회(IAU) 세계랭킹 상위권 랭커를 비롯해 25개국 244명의 철각들이 레이스에 나선다. 한국에서도 국가대표 상비군 10명 이상이 출전한다.

한국 대표로는 지난해 일본 사로마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00km를 7시간 16분대에 주파한 진병환 씨 등 7시간대 기록을 가진 남자선수 6명과 8시간대(8시간 5분) 기록을 보유한 김정옥 씨 등 여자선수가 출전한다. 마스터스 마라토너 800여 명과 동호회원 등 2000여 명도 참가할 예정이다.

연맹의 이용수 회장은 “이번 세계 대회는 울트라 동호인은 물론 일반 마라토너들도 세계적인 선수와 함께 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적극적인 참여를 당부했다. 참가 문의는 (사)대한울트라마라톤연맹(www.kumf.org)으로 하면 된다. 02-2652-3040.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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