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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9월 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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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남자가 욕조가 놓인 방으로 들어가는 데서 시작한다. 남자가 욕조에 물을 채우고 머리를 담그는 장면으로 소설은 끝난다. 길지 않은 시간 남자가 지나간 사랑 이야기를 독백하는 것으로 소설은 흘러간다.
신 앞에 놓인 종교적 주제를 탐색하는 작가, 인간 정체성의 근원적인 위기를 짚는 소설가로 잘 알려진 이승우 씨. 그가 이번엔 ‘연애소설’을 썼다. 관념적인 그의 작품에서 보기 드물었던, 남녀의 사랑 얘기다.
“당신이 지금 읽으려고 하는 소설이 한 편의 연애소설이기를 바란다. 혹은 그렇게 읽히기를…”이라고 말한다. 작가가 쑥스러워하는 게 아닌가 싶지만, 읽어 보면 “연애소설로 읽히기를 바란다”는 작가의 말이 무슨 뜻인지 헤아려진다. 이승우 소설답게 평범한 연애 얘기마저도 낯설게 다가온다.
이 씨가 보기에 연애는 피부교감(스킨십)과 밀어의 나눔이 아니다. 그것은 망설임과 자기합리화의 반복이다. 아내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남자는 H시 근무 발령을 받고 여자를 떠올렸다. 얼마 전 카리브 해 출장 중 만났던 그 여자는 H시에 산다고 했다. 남자가 지방 근무를 받아들였던 건 여자와 아무 상관없는 일이었을까? 여자에게 전화를 걸면서 남자는 타지에서 유일하게 아는 사람이니까라고 합리화를 한다.
남자는 여자의 집에 머물면서 여자와 함께 욕조를 쓰고 침대에 눕는다. 카리브 해 출장 중 만난 여자는 남편과 아들이 비행기 사고로 수장(水葬)됐다고 했다. 그때 카리브 해 물빛은 쓸쓸하면서도 아름다워 보였다. 이국에서 여자의 고독과 상처는 매혹적이었지만, 막상 일상의 시공간에서 몸을 부대끼게 되자 남자는 이상하게 힘들고 불편하다. “밤마다 여자의 욕조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를 견딜 수 없다”는 이유로 남자는 집을 나온다.
연애라는 가장 낭만적인 인간사에서 이 씨가 발견하는 것은 인간의 비열함이다. 사랑이라는 게 과연 아름다운 감정이던가? 아니, 사랑이라는 게 있기는 하던가? 어쩌면 존재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 합리화가 아닌가? 소설 속 남자가 물속에 머리를 집어넣은 것은 이 질문에 이르러서가 아닐까?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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