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 ‘생명권력’ 알면 ‘황우석’이 보인다

  • 입력 2006년 9월 5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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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푸코의 생명권력 담론은 21세기 생명과학시대의 정치경제학으로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미셸 푸코의 생명권력 담론은 21세기 생명과학시대의 정치경제학으로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미셸 푸코의 생명정치론에 따르면 생명 윤리적 문제에서 민족주의가 분출되는 현상이 자연스럽게 설명된다.
미셸 푸코의 생명정치론에 따르면 생명 윤리적 문제에서 민족주의가 분출되는 현상이 자연스럽게 설명된다.
생명공학의 윤리문제를 제기했던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 사태를 더욱 꼬이게 한 것은 한국의 우수한 기술력을 지켜야 한다는 민족주의적 열정이 개입됐기 때문이다. 21세기 첨단 생명공학과 19세기 민족주의의 만남은 과연 한국만의 독특한 현상일까.

이 양자의 상관관계를 설명해 주는 새로운 이론적 모델이 국내에 소개되기 시작했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가 제창하고 이탈리아의 정치사상가 조르조 아감벤이 발전시킨 생명권력(bio power)과 생명정치(bio politics)에 대한 이론이다.

‘문학과 사회’ 가을호 특집 ‘생명정치-권력과 저항의 새로운 쟁점’은 푸코의 규율권력에 비해 그동안 크게 각광받지 못하던 생명권력과 생명정치 이론을 상세히 소개했다.

생명권력은 ‘감시와 처벌’(1975년) 등을 통해 푸코가 제시했던 규율권력과 대비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규율권력이 감옥과 병영, 병원, 공장, 학교를 통해 규율화된 개인을 생산하는 미시권력이라면 생명권력은 전체 인구의 출생·사망률 조절과 복지 및 장수의 확대를 통해 지속적 생산력을 확보하려는 거시권력이다.

푸코에 따르면 생명권력도 규율권력처럼 근대의 산물이다. 생명권력의 근대성은 과거 주권자의 생살여탈권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생살여탈권이 ‘죽게 만들거나, 살게 놔두는 권한’이라면 생명권력은 ‘살게 만들고, 죽게 내버려 두는 권한’이다. 다시 말해 과거 권력은 생명 단축의 위협을 통해 성립했지만 오늘날 권력은 생명 연장의 기회 보장을 수단으로 성립한다는 뜻이다.

이런 생명권력은 18세기 말 이후 유럽에서 공중보건을 주로 담당하는 보건의학의 발생, 보험 및 사회보장제도의 등장, 도시환경의 정비 등을 통해 구체화된다. 특히 1942년 영국에서 복지국가의 청사진을 제시한 비버리지 보고서가 채택된 이후 복지국가의 출현은 사회가 단지 사회구성원의 생명뿐 아니라 건강한 생명까지도 보장함으로써 생명정치의 융성을 낳게 된다.(진태원 서울대 철학과 강사)

반면에 아감벤은 푸코와 달리 ‘벌거벗은 삶’(개인적 생명)에 국가권력이 개입하는 생명정치 현상을 근대적 산물이 아니라 고대부터 지속된 권력의 속성으로 봤다. 다만 과거엔 사회의 예외적 존재(호모사케르·생물학적으로는 존재하지만 법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사회구성의 희생자)에 가해지던 것이 근대에 들어서는 사회구성원 전체를 포괄하면서 하나의 규칙이 돼 버렸다는 것이다.(양창렬 파리1대 철학과 박사과정)

1990년대 후반 재발견된 이런 생명정치 담론은 생명과학의 시대에 접어든 21세기에서 그 유효성을 입증한다.

푸코는 그 생명정치의 본질적 속성에 정상인(살 만한 가치가 있는 자)과 비정상인(살 만한 가치가 없는 자)을 구별하는 ‘인종주의’가 작용하고 있음을 간파했다. 이 인종주의는 17세기 이후 민족주의(종족적 인종주의)의 형태로 투사됐다. 이런 인종주의적 속성은 민족주의의 특수성이 부각되면 민족공동체의 핵심 구성원과 주변적 존재의 차이를 강조하는 초강민족주의(supernationalism)로 발전하고 민족주의의 보편성을 강조하면 민족공동체를 뛰어넘어 개인의 ‘내적 경계선’으로 차별이 이뤄지는 초민족주의(supranationalism)로 발전한다.(최원 시카고 로욜라대 박사과정)

진태원 씨는 “푸코의 생명정치론에 따르면 황우석 사태라는 생명윤리적 문제에서 민족주의가 분출되는 현상도 자연스럽게 설명된다”며 “이처럼 생명정치론은 생명공학과 생명윤리, 복지국가 논쟁이 간과하고 있는 현상을 새로운 문제인식의 틀로 바라보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서구에선 활발한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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