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로 논술잡기]평이한 시어-역설적 논리…‘님의 침묵’

  • 입력 2006년 9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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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침묵/한용운 지음/215쪽·6000원·범우사

어려운 참고서 한 권을 다 읽어 냈을 때의 뿌듯함과 자신감을 아는 사람은 안다. 같은 이치로 시집 한 권을 잘 읽어 낸 경험은 청소년에게 말할 수 없이 큰 힘이 된다. 문일지십(聞一知十).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안다는 말처럼, 좋은 시집은 시와 문학을 깨우치고 삶의 지혜와 논리를 가져다줄 훌륭한 발판이 된다. 문제는 시집 한 권을 제대로 읽어 낸 청소년이 과연 몇이나 되는가 하는 점이다.

시집 ‘님의 침묵’은 이런 면에서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쉬운 언어와 경어체, 그리고 88편의 시 전체를 일관하는 ‘임’이라는 제재의 단순함 등 거기에는 청소년의 접근을 막는 아무런 장애물도 없다. 더욱이 만해 한용운의 시에는 1920년대 자유시가 모색했던 이렇다 할 형식적 실험도 없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그의 시가 늘 관심을 끄는 이유는 평이한 시어 속에 우리의 일상과 안일한 사고를 뒤엎는 깊은 깨달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 깨달음을 위해 만해는 역설을 즐겨 사용한다. 남들은 임을 생각한다지만 그는 임을 잊고자 한다고 한다. 또 사랑의 속박은 단단히 얽어매는 것이 풀어 주는 것이듯 대해탈(大解脫)은 속박에서 얻을 수 있다고도 한다.

언뜻 그의 시는 말의 앞뒤가 맞지 않는 듯하다. 그러나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는 만해식 서술 방식을 통해 우리는 만해의 시가 지닌 역설적 논리를 만난다. 어렵고 힘든 순간이 사실은 우리 존재의 가치와 참모습을 찾을 수 있는 더없는 기회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만해의 역설은 이별을 만남으로 바꾸고, 타고 남은 재를 다시 기름으로 되돌리며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당신이 노래를 부르지 않는 때에도 당신의 노랫가락을 들을 수 있고, 눈을 감은 때에도 당신의 얼굴을 봄”으로써 슬픔과 절망 속에서도 우리가 삶을 지속해야 할 새로운 희망과 존재의 이유를 제공하는 것이다.

만해의 시는 어려운 지식이나 남다른 시적 기교 없이 깊은 사색과 성찰의 깊이로 시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것은 평범한 삶과 일상적 언어로도 얼마든지 인생에 대한 통찰이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논술의 경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난해한 지식과 세련된 글재주를 논술의 필수 요소처럼 생각하는 청소년이 많다. 그런 청소년에게 이 책이 꿈과 희망을 키우고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사고의 틀을 마련할 전기가 된다면 좋겠다.

문재용 서울 오산고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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