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마다 입에 맞는 음식 제각각”… 편식의 변명

  • 입력 2006년 9월 1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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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편식을 그저 먹기 싫어서 떼쓰는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최근 맛을 느끼는 유전자의 미세한 차이에 따라 특정 음식을 먹었을 때 실제로 몸이 다르게 반응한다는 연구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사진 제공 미국농업연구소
아이들의 편식을 그저 먹기 싫어서 떼쓰는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최근 맛을 느끼는 유전자의 미세한 차이에 따라 특정 음식을 먹었을 때 실제로 몸이 다르게 반응한다는 연구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사진 제공 미국농업연구소
《“엄마, 이거 먹기 싫어요!”

편식하는 아이를 보는 엄마의 마음은 안타깝기만 하다.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것 같아 솔직히 얄미울 때도 있다.

최근 편식에도 이유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먹기 싫어서 괜히 투정 부리는 것만은 아니라는 얘기.

과학자들은 맛을 느끼는 유전자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 쓴 맛 느끼는 정도 사람마다 달라

혀에는 맛을 느끼게 하는 수용체가 있다. 음식을 먹으면 맛을 내는 성분이 수용체에 결합한다. 수용체가 이를 인식해 뇌로 신호를 보내면 어떤 맛인지를 알아차리게 되는 것.

맛 수용체의 유전자(TAS2R38)는 특이하게도 3가지 유형(AA형, PP형, AP형)이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셋 중 한 가지 유형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

유전자는 A, T, G, C의 4가지 염기서열이 수백 개 이상 반복돼 있는 구조. 맛 수용체 유전자의 세 유형은 이 가운데 불과 한 개의 염기서열만 차이가 난다.

캐나다 토론토대 아메드 엘 소헤미 교수팀은 실험참가자 467명을 모집해 맛 수용체 유전자 유형에 따라 세 그룹으로 분류했다. 각 그룹에 시금치, 양배추, 커피 등 떫거나 쓴 맛이 나는 20여 가지 식품을 먹고 맛의 강도를 1부터 9까지의 숫자로 표현하게 했다.

그 결과 AA형 그룹에는 떫거나 쓴맛을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반대로 PP형 그룹에는 잘 느끼는 사람이 많았다. 이 연구 결과는 지난달 20∼22일 충남 안면도에서 열린 ‘한국혁신과학기술학회’에서 발표됐다.

엘 소헤미 교수는 “쓴맛에 특히 민감한 유전자 유형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쓴맛을 덜 느끼게 성분을 개발하는 것도 식품업계의 미래 전략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쌉쌀한 야채를 찍어먹는 소스를 유전자 유형별로 만들 수도 있다.

야채를 유달리 싫어하는 아이들이 쓴맛을 잘 인식하는 PP형 맛 수용체 유전자를 갖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 브로콜리 오렌지, 모든 산모에게 필요하진 않아

연구자들은 임신 중이나 투병 중의 식이요법도 유전자 유형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임신한 여성들은 엽산이 많이 들어 있는 브로콜리, 오렌지, 딸기, 땅콩, 강낭콩 등을 많이 먹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엽산이 부족하면 몸속에 호모시스테인이 많아져 태아가 기형이 될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일반인도 암, 알츠하이머병, 심장병 등에 걸릴 가능성이 커진다고 알려져 있다.

엽산의 소화과정 중에 작동하는 MTHFR 유전자는 호모시스테인을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사람들은 이 유전자의 세 가지 유형(CC형, TT형, CT형) 중 하나를 갖고 있다.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 김양하 교수는 24일 열린 ‘융합과학학술대회’에서 “TT형은 엽산이 부족할 때 병에 걸릴 위험이 2배로 뛰지만 CC형은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산모의 MTHFR 유전자가 CC형인 경우 엽산을 일부러 많이 섭취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 사상체질도 유전자 차이로 증명

이같은 연구가 한국의 사상의학을 뒷받침할 수 있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사상의학은 사람이 태양, 태음, 소양, 소음 중 어떤 체질이냐에 따라 같은 병에 걸려도 다른 약으로 치료해야 한다는 한의학의 이론. 4가지 체질마다 실제로 특정 유전자에 차이가 있다면 약을 먹었을 때의 반응도 다를 수 있다.

결국 미래에는 개인별 유전자 차이를 고려한 ‘맞춤형 식단’뿐 아니라 ‘맞춤형 의약품’까지 등장할 전망이다. 그러나 김 교수는 “자칫 모든 생명현상을 유전자가 좌우한다는 극단적인 ‘유전자 결정론’에 빠질 위험도 있다”며 “한국인의 유전자 유형과 생리적 반응의 관계에 대한 연구 결과를 충분히 확보하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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