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에 핀 꽃 두 송이…국내 단2명 女어름사니 박지나-서주향 양

  • 입력 2006년 8월 23일 03시 33분


코멘트
여자 줄꾼 박지나(왼쪽), 서주향 양이 인기를 끌자 남사당 전수관에서는 두 사람이 함께 공연하는 ‘쌍줄타기’도 구상하고 있다. 안성=전영한 기자
여자 줄꾼 박지나(왼쪽), 서주향 양이 인기를 끌자 남사당 전수관에서는 두 사람이 함께 공연하는 ‘쌍줄타기’도 구상하고 있다. 안성=전영한 기자
“죽을 판 살판-‘왕의 남자’ 재주꾼들이 펼치는 축제 한마당∼.”

21일 오전 10시 반. 경기 안성시 남사당전수관. 영화 ‘왕의 남자’의 대형 사진을 배경으로 앞마당 공연장엔 어름(외줄타기) 공연을 위한 외줄이 매달려 있었다. 얼음판을 걷듯 아슬아슬 위험하다고 해서 ‘어름’이라 한다던가. 2m70cm 높이의 팽팽한 외줄 위에는 앳된 얼굴의 두 소녀가 활짝 웃으며 책상다리로 앉아 있었다.

● 안성 출신 여꼭두쇠 ‘바우덕이’ 전통 이으려…

안성시립남사당바우덕이 풍물단의 박지나(18·안성종고 3년)와 서주향(14·안성여중 2년). 전국에서 단 두 명뿐인 여자 어름사니(줄꾼)다. 여자 어름사니지만 긴 머리는 틀어 올려 패랭이 속에 감추고 복장도 남자처럼 입는다. 주향이는 얼굴에서 ‘애 티’가 풀풀 났지만 지나의 눈가와 입술에는 엷은 아이섀도와 핑크빛 립스틱이 살짝 발려 있었다.

박지나-서주향양 '국내 단 2명 어름사니'사진 더보기

“여자라서 어려운 점이오? 역시 힘이 부족한 거죠. 파워가 있어야 더 시원스럽게 뛰어오를 수 있는데. 여자는 아무래도 가슴도 있고 엉덩이도 커서 몸이 더 무겁대요.”

지나와 주향이는 올해로 줄타기 경력 7년째. 우연히 남사당패 공연을 보고 끌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초등학교 6학년과 2학년 때 나란히 줄타기를 시작했다. 당시 남사당 전수관 측은 19세기 말 유일무이하게 사당패 우두머리인 ‘꼭두쇠’에 오른 전설적인 바우덕이의 전통을 잇기 위해 처음으로 ‘여자 어름사니’를 뽑았다.

두 소녀가 구사할 줄 아는 기술은 20가지 정도. ‘왕의 남자’의 마지막 장면으로 유명한 ‘양발 끝으로 코차기’도 배웠다.

줄에서 뛰어올랐다가 다리 사이에 줄을 끼우고 내려 앉을 때 남자든 여자든 ‘거기’가 아프진 않을까. 둘은 깔깔대며 “거기에 끼면 큰일 난다”며 “오른쪽 엉덩이 가운데 부분에 걸쳐 앉는 것”이라고 가르쳐준다.

줄에 스쳐 오른쪽 엉덩이는 수없이 까지고 아물기를 반복하다보니 ‘자랑스러운 훈장’처럼 흉터가 생겼다. 늘 부채를 쥐어야 하는 오른손을 뒤집어 보니 손바닥 한가운데 굳은살이 단단히 박여 있었다.

● 26, 27일 서울-청계광장서 맛보기 공연

“처음엔 줄타기보다 재담이 더 힘들었죠. 그래서 선생님이 재담을 밑에서 대신 해 주기도 하셨어요.”

지금은? 상황을 봐 가며 ‘즉석 멘트’도 날린다.

“남들 다 조용한데 괜히 ‘얼씨구’ ‘잘한다’ 하며 소리소리 지르는 아저씨가 계셨어요. 그래서 ‘아이고, 멀리 삼촌이 처음 제 공연을 보러 와 너무 좋아 저러시니 우리 삼촌께 박수나 한번 보내 주세요’ 하고 넘어가기도 했죠.”

두 소녀는 다음 달 27일∼10월 1일 안성시에서 열리는 ‘안성남사당바우덕이 축제’(02-6263-3433)에 나선다. 이에 앞서 홍보를 위해 이번 주말인 26일과 27일 서울광장과 청계광장에서 ‘맛보기 줄타기 공연’도 펼친다.

아침부터 밤까지 팽팽한 외줄과 싸우는 소녀들은 줄 위에서 ‘따로 또 같이’ 살아가는 인생의 의미도 깨친다.

“줄을 탈 땐 철저히 혼자죠. 줄 위에선 아무도 도와줄 수 없어요. 하지만 줄 타는 공연은 결코 혼자가 아니에요. 밑에서 박자를 넣어 주는 악사도 있고, 지켜보며 호응해 주는 관객도 필요하죠. 줄은 혼자 타지만 공연은 주위의 도움으로 함께 만들어 가는 겁니다.”

안성=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