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나성린]재정 근간 뒤흔든 ‘사채 유통원’

  • 입력 2006년 8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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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인 신문유통원의 원장이 예산이 부족하자 사채를 동원하고 이자까지 지급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제대로 된 국가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문화부 차관의 경질 원인을 밝히는 과정에서 드러난 이번 사건은 국가 운영에는 아마추어인 이들이 모든 일을 원칙과 제도를 무시한 채 밀어붙이다 발생한 창피한 일이다.

참여정부는 경제활성화와 국민복지 향상을 위한 정책의 수립과 집행에서의 실패를 홍보 부족 탓으로 돌리면서 국정홍보에 막대한 국민의 혈세를 쏟아 부었다. 영상홍보원(KTV)의 파행적 운영, 아리랑TV 부사장에 대한 실패한 인사 청탁 그리고 대부분 위헌 판결이 난 신문법에 근거한 신문유통원 설립 등이 모두 홍보에 대한 과도한 집착에서 비롯되었다.

이번 신문유통원장의 사채 동원은 애초부터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신문유통원의 설립에서 비롯되었다. 일부 신문의 대국민 영향력을 두려워하고 자신들을 지지해 줄 친여신문을 원하는 청와대의 홍보책임자들이 ‘국민의 폭넓은 언론매체 선택권 보장’을 구실로 신문유통원의 설립을 밀어붙이면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신문사들의 출자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당연히 정부 예산이 지원되지 않았어야 했고, 유통원 공동 배달 사업은 연기되었어야 했다. 그런데 화급을 다투는 중요한 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신문유통원장은 사채를 끌어다 쓰면서까지 사업을 진행하였다. 이는 청와대의 강력한 의지가 뒤에 있기에 기획예산처가 결국 예산을 집행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국방과 함께 국가를 유지하고 있는 양대 축인 국가 재정 원칙이 흔들리는 중요한 사건이다. 예산 지원의 요건을 충족하지 않은 공공기관에 대해 기획예산처가 예산을 집행한 것도 중요한 위법행위이고, 공공기관의 정상적 회계처리 절차를 지키지 않고 사채를 끌어다 쓴 신문유통원장의 행위는 더욱 심각한 위법행위이다.

신문유통원장은 “진행 중인 사업을 중단할 수 없었고 이는 최고경영자의 책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지만 그렇게 간단히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부기관이나 공공기관은 물론 민간기업도 조직 운영 내용 중 자금 운영에 관한 사항은 그 규정이 어느 항목보다 엄격하다. 그래서 정부 예산은 예산회계법 등으로, 기업은 기업예산회계법 등에 ‘이사회 의결 사항’을 명시하는 등 돈 흐름에 엄격한 규정을 두고 있는 것이다. 정부 예산이라면 작은 사용 항목을 바꿀 때라도 대부분 기획예산처 장관의 승인을 얻도록 하고, 기업은 이사회의 의결을 반드시 거치도록 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엄격히 관리하지 않고 이번 경우처럼 ‘당장 급해서’ 등의 이유로 자금이 운영된다면 조직 운영 시스템은 어찌 될 것인가. 기업이라면 신용도에 큰 영향을 미칠 일이다. 더욱이 정부 등 공공기관이라면 조직 기강을 흔드는 사안이자, 헌법상의 국가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무시한 있어서는 안 될 행위이다.

지난 3년 반 동안 참여정부는 방만한 재정 집행과 제멋대로의 인사정책으로 나라의 근간을 지속적으로 흔들어 왔다.

생각만 같고 능력과 전문성이 부족한 사람들을 공개모집으로 위장해 쓰는 코드인사로 인해 지난 몇 십 년간 힘들게 쌓아 온 대한민국의 효율적 국정운영 시스템도 흔들리고 있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어느 집안에서 장차관이 나오면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하고 주변 사람들도 부러워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그렇게 부러워만 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자리에 걸맞지 않은 인물을 존경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나성린 한양대 교수·경제금융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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